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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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마녀 키운 미다스(Midas) 손길
한국 배구가 세계 일류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 1964년 도
쿄 올림픽 때 개최국 일본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일본인 다이마쓰 히로부미(大松博
文) 감독이다. 일본 배구를 일으켜 세운 신화적 존재인 그는 마치 연금술사와도 같은
신비의 지도법으로 국제 경험도, 승리의 의지도 부족한 우리 여자선수들을 혹독한 훈
련으로 조련해 몬트리올 올림픽 메달리스트 반열에 올려놓았다. 전설과도 같은 ‘동양
의 마녀’를 키운 방법 그대로 우리 대표선수들에게도 하루 8시간에 걸친 고된 훈련을
밀어붙인 결실이었다.
다이마쓰 감독이 조련한 일본 여자배구의 승리 비결이라면 회전수비와 볼 끝의 변
화가 심한 체인지업 서브였다. 이 비장의 무기로 당시 다이마쓰 감독이 지도한 니치
보 가이쓰카(貝塚)는 일본 여자배구를 제패했으며 니치보가 주축을 이룬 일본 여자대
표팀은 196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무적의 최강으로 군림하던 소련을 무너뜨리고 동
양팀으로서는 처음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일본은 여세를 몰아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감격을 누렸다.
그러나 다이마쓰 배구를 받아들이고 단련 받는 과정에서 두 차례나 선수단 반발이
일어나 무단으로 숙소를 집단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이마쓰 스타일은 강도 높은 하드트레이닝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선수들을 더 혹독히 훈련하여 근성 있는 선수를 만드는 방식이
다. 그는 선수들이 탈진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훈련 스타일을 고집한 것이다.
이러한 개성 때문에 일본에서도 일각에서는 ‘오니마쓰’(鬼松)니 ‘일본여성의 적(敵)’이라
는혹평이일어나의회에서까지논란을빚은적이있다. ‘불가능은없다’는그의수기를보
면처음이런주장을내세우고있다. ‘스포츠는그사회나단체의강약을말해주는바로미
터가된다. 그러므로정신적으로뭉칠수있다면어떠한어려움도우리는극복할수있다.’
세계 무대에서의 놀라운 성취는 피나는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
다. 1969년 이후 세 차례 우리 여자대표팀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주력선수들이 훈련을
마칠 때쯤이면 거의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대한체육회장 초청으로 방한, 국세
청과 동일방직 두 실업팀과 중고교팀 특별지도를 시작했으며 다음엔 아시아청소년선
수권대회에 나갈 대표팀을 위한 특별훈련이 있었다. 남자 고교 배구의 명문 대신고가
주로훈련파트너가됐다.
이때의훈련과연습경기는대체로 10세트로진행됐다. 살인적인훈련량이었다. 게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