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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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에 부응해 박만복은 1981년 제2회 세계여자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 이
어 준우승, 1982년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을 밀어내고 중공에 이어 준우승,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4위를 기록하며 페루 여자배구를 세계 정상권으로 끌어 올
렸다. 마침내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따내 페루 국민들을 환호하게 만들
었다. 그러나 이 대회 결승전에서 필승을 다짐하던 박만복은 소련에 2-3으로 아깝게
역전패한 후 오랫동안 분루를 흘렸다.
페루 여자대표팀을 맡은 이후의 기적 같은 성과로 그는 현지 국민들에게 ‘맘보 박’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페루의 우상이 되었다. 페루배구협회 기술 총감독을 맡아 왕
성하게 활동하던 박만복에게 2016년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페루의 국민적 영웅일
뿐 아니라 세계 배구의 전설로서 2016년도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된 것이다. 우리
배구인으로서도 처음 맞는 경사였다.
1964년 한국 배구의 올림픽 첫 무대인 도쿄 대회에 출전했던 남자대표팀의 에이스
스파이커 손영완(孫永完)은 1975년 아르헨티나로 진출, 8년 동안 아르헨티나 남자대
표팀 감독직을 수행하며 아르헨티나의 무서운 잠재력을 세상에 알렸다. 1982년 그는
아르헨티나를 세계남자배구 3위에 올려놓았다. 1984년 이후에는 브라질로 자리를 옮
겨 6년 동안 국가대표팀과 함께 주니어대표 훈련까지 떠맡아 오늘날 세계 정상에 군
림하는 브라질 배구의 기초를 닦았다. 192cm의 장신으로 1963년 뉴델리에서 첫 남북
대결을 3-2 승리로 이끌었으며 30세가 넘도록 우리 남자팀을 대표하는 간판선수로
활약하던 그는 또한 우리 배구를 해외에 널리 전파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배구협회
특별공로상을 받았으며 대한배우회 회장도 지냈다.
남미에서는 이외에도 심재화가 멕시코 남자대표팀, 석학수가 페루 청소년대표팀,
송세영이 도미니카 여자대표팀, 김철용이 페루 여자대표팀을 지도하며 우리의 배구
기술을 전수했다.
동으로 서로 해외진출 러시
한국배구의약진은이처럼수많은지도자의해외진출에서도잘나타난다. 1976년올
림픽의여자배구동메달, 뒤이어 1978년세계선수권대회의남자배구 4강성과에힘입어
한국지도자들에게는꼭배워야할무엇이있다는믿음이확산되어미대륙과유럽, 중동
각지에서코치에이어선수초청이쇄도한것이다. 이는개인경기태권도나양궁지도자
배구 주요 활동_
개척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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