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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따냈다. 그러나 5개 팀이 참가한 여자부에서는 우리 대표팀이 북한에 3-0으로 패
하면서 4전 전승의 북한에 이어 3승1패로 2위에 올랐으나 본선 진출권을 따는 데는 실
패했으나올림픽을앞두고북한이불참하는바람에대신올림픽에참가할수있었다.
이처럼 도쿄 올림픽 예선전에 심판으로 참여했지만 정작 도쿄 올림픽에는 우리나
라의 국제심판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그 뒤 3년이 지난 1967년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일본에서 열린 제5회 세계여자선
수권대회에 이재창 국제심판이 참가했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가 남녀 통틀어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한 대회였다. 당초 이 대회에는 북한 등 11개국이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북한과 동독의 호칭 문제로 공산권 7개국이 불참하는 바람에 단 4개국
만 참가해 우리나라가 3위를 했었다. 이재창 국제심판은 사실상 결승전이 된 일본과
미국의 경기에 주심을 봤다. 그 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박진관 국제심판(작고)이
참가, 첫 올림픽 심판으로 이름을 남겼다. 박진관과 유붕수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
픽에서도 국제심판으로 활약했다.
우리나라 국제심판 11명 활약, FIVB 심판 3명 배출
이재창 국제심판이 세계여자선수권대회 심판으로 참여하고 박진관 국제심판이 멕
시코 올림픽 심판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국제심판들의 활동 반경도 넓어지고 기
량도 함께 발전했다.
도쿄 올림픽 이후 국제배구연맹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등 국제배구연맹
이 주관하는 대회에는 참가하는 국가에서 심판 1명을 파견하는 ‘대동 심판제’를 운
영했다. 하지만 각 나라에서 참가하는 심판들 간에 기량 차이가 심하게 나는 등 여
러 가지 문제점들이 불거져 1990년부터는 ‘FIVB 심판’과 ‘지명 심판’ 제도를 함께
도입했다.
2013년까지 시행된 ‘FIVB 심판’ 제도는 국제심판을 3단계, 즉 국제심판 후보
(International Referee Candidate), 국제심판(International Referee), FIVB 심판
으로 나눈 제도이다.
국제심판 후보는 국제 친선경기나 성인대회 및 지역대회, 그리고 FIVB 대회에 초
청을 받아 나간다. 국제심판은 주니어선수권대회 준결승전 이상, 월드리그 결승라운
드, 그랑프리 결승라운드 등에서 주심 7회 이상, 부심 3회 이상을 보아야 FIVB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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