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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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주요 활동_
개척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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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시대 이야기
한국 배구의 전설
박계조는 한국 배구의 전설로 통한다. 1918년 강화도에서 태어나 전국 대회는 물론
일본무대까지 뒤흔들 만큼 불세출의 플레이어였다. 일본 유학중 일본인 무라이와 결
혼했고, 광복과 함께 그리운 조국에 돌아온 이후 배구에 쏟은 헌신과 열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오랜 병고를 안고 방황 끝에 진해에서 잠들기까지, ‘배구 천재’
의 탄생과 요절은 위리 배구사에서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그의 동료와
후진들이 고인 추모 배구대회를 열게 된 것도 그의 뜻을 계승하고 업적을 높이 현양
하기 위함이다.
박계조는 어떤 구속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 제
1고보 재학 중에도 장난꾸러기로 유명했지만 실업단 진출 이후에도 철도와 체신을 드
나들며 자유롭게 뛰어 다녔다. 그런 점에서는 이중등록으로 물의를 빚곤 했던 안종호
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국내 배구선수론 처음 일본 유학(와세다대학)을 떠난 뒤에도 분방한 생활은 계속되
었다. 인기 스타로 일본 무대를 주름잡게 되면서 그의 독특한 공격 스타일, 낮게 올린
세트를 수직으로 눌러버리는 속공이 홀딩이냐 아니냐로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일본
배구협회로서는 이를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라는 압력
을 받기도 했다.
개척시대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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