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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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배구’와 함께 수비에 치중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1989년 제6회 대통령배 대회 1, 2차대회에서 미도파를 무릎 꿇리더니, 현대에도 일
격을 가해 파란을 일으켰다. 최종 결승전에서 현대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창단이
후 최고의 성적을 거둔 해였고, 호남정유의 변신을 알리는 기회였다.
여고졸업반 선수들을 주축으로 여자배구 코트에 파란을 일으킨 호남정유는 2년 뒤
제8회 대통령배대회에서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2년 전 챔피언 결정전에서 현대에
패했던 아픔을 씻어냈고 창단 21년 만에 최고가 되었다.
호남정유는 1991년 3월 5일 제8회 대통령배 대회 3차 대회에서 흥국생명을 3-0으
로 완파한 이후 1995년 1월 3일 선경에 1-3으로 패할 때까지 3년 10개월 동안 92연
승 기록을 쌓았다. 대통령배대회 6년 연속우승과 이어진 슈퍼리그 3연속 우승을 합해
9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비틀거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운이 따라줬
다. 1995년 슈퍼리그 최종결승전에선 한일합섬이 선수등록이 안된 선수를 착오로 기
용하는 바람에, 싸우지 않고 싱겁게 승리를 챙긴 적도 있었다.
2000년 슈퍼리그에서 LG정유(1997년 팀 이름 바꿈)는 재정비를 완벽하게 하고 나
온 현대에 무너져 10년 아성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1991~1999년까지 9년 동안 여
자배구 정상을 지킨 최장수 무적함대였다.
1968~1972년 여자배구 정상을 독점했던 국세청의 5년, 1973~1980년 여자배구의
전성기에 정상을 휩쓸었던 미도파의 8년을 넘어서는 장기 집권이었다.
현대의 부활
‘왕년의 호랑이’ 현대건설이 다시 배구명가의 명성을 회복한 것은 2000년이다. 제2
회 현대 아산배 슈퍼리그 최종결승에서 철옹성 LG정유를 3승1패로 무너뜨렸다. 먼저
2경기를 따낸 뒤, 세 번째 경기를 3-0으로 내준 다음 벌인 네 번째 경기는 초반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 열전이었다. 25-22, 21-21, 25-27, 25-21. 한 세트씩 주고받
으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소경기를 벌인 끝에 마지막 세트에서 현대건설은 15-5
의 승리를 움켜쥐었다. l0년 만에 맛보는 우승의 기쁨이었다.
1차 대회에서 현대건설은 10연속 우승을 노리던 거함 LG정유와 접전을 벌였으나
3-1로 무너졌고, 2차 대회에선 셋째 세트에서 32-30으로 꺾었지만 3-2로 아쉽게
패해 정상 정복에 한발 더 다가섰다. 더블리그로 펼쳐진 3차 대회에선 한 경기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