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62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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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흥은행의 라이벌인 제일은행의 경우 1969년에 이르러 비로소 실업리그 우
승을 차지할 만큼 발전이 늦은 편이었다. 이러한 성적과 함께 금융권에 불어 닥친 경
영난의 한파로 직격탄을 맞은 제일은행은 1969년 9월 팀 해체를 선언, 다수의 대표선
수를 배출한 보람도 없이 와해되고 말았다. 이들 가운데 문경숙, 김영자, 이은옥, 이
향심, 김은옥 등 5명은 멕시코시티 올림픽 멤버였다.
제일은행의 스포츠단 해체는 배구에 그치지 않고 야구, 축구, 농구 등 인기구기 전
종목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그 충격파가 컸다.
다행히 선경직물(현 SK그룹 모체)이 이들을 인수하고 이듬해 1970년부터 방직시대
(동일방직, 경성방직, 대전방직)에 동참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전환의 계기
가 되었다.
이렇게 금융 3강 대결에 이은 방직 3강 시대를 거치며 세계화의 꿈을 키워온 여자
배구는 1960-1970년대 4차례 올림픽에 도전한 무한도전과 전진의 산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여기에 덧붙일만한 것은 조흥은행(김명수, 박진관), 제일은행(오제월, 박무), 대한
실업(구연묵), 국세청(박만복, 이창호) 등이 모두 국가대표 감독 또는 코치를 영입, 두
뇌싸움을 벌임으로써 올림픽 4강권 수준의 지도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국세청 여자팀의 돌풍과 독주
1968년 2월초, 국세청이 숭의여고 졸업생 8명과 중앙여고 출신 4명으로 여자 실업
팀을 창단했을 때만해도 다른 실업팀들이 경계해야 할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전년도에 중앙여고가 종별선수권대회 우승팀이긴 했지만 장신 선수들이 없었다.
키 170cm가 넘는 선수는 숭의여고 출신의 이윤순(170cm)뿐. 평균 신장 166cm의 단
신 팀이었다. 팀에 경기를 리드할 선배 선수들이 없는 동년배들끼리의 집단이라는 점
도 약점이었다.
당시 최강 팀은 제일은행이었다. 최고의 공격 스타 김영자와 명세터 문경숙이 버틴
제일은행을 산업은행과 동일방직이 도전하며 간간이 정상에 오르고 있었다.
국세청은 단신의 핸디캡을 패기 넘치는 철저한 수비로 극복했다. 창단 첫해에 거둔
성과는 놀랍다. 4월 1차 실업리그 우승, 2차 실업리그 준우승, 5월 3차 실업리그 우승
으로 종합우승을 차지한데다 박계조배 대회, 전국체전, 종합선수권대회 등 전 대회를
1...,352,353,354,355,356,357,358,359,360,361 363,364,365,366,367,368,369,370,371,37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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