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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가 원년우승을 노렸으나 4강전에서 대학 복병 경기대에 무릎을 꿇어 결승 문턱
을 넘지 못했다.
신예 정의탁(195cm, 경기대), 김철휘(183cm)를 스카우트한 고려증권은 여유있게
결승에 진출, 이종경이 발목부상으로 제 몫을 못한 경기대를 3-0으로 제압, 첫 우승
과 함께 원년챔프의 영광을 안았다.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은 MVP, 인기상, 베스
트6 등 3관왕에 올랐고 유중탁도 베스트6에 뽑혔다. 고려증권은 1984년 종별선수권
대회의 패권도 차지해 2관왕에 올랐고 현대자동차써비스는 박계조배 대회와 전국체
전 우승에 만족해야했다.
정의탁의 스카우트에는 실패했지만 대학 트리오 가운데 이용선(188cm, 인하대)
과 은흥기(190cm, 경상대), 그리고 이정철(성균관대), 신일균(인하대), 최봉호(서
울대) 등 신인들을 대거 영입한 금성은 1976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우승이 없는
해가 되었다.
1985년 제2회 대통령배대회 초반, 1차 리그에서 고려증권은 성균관대와 금성에 패
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2차 리그에서도 금성에 3-2로 져 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3차 리그에서 금성에 설욕하더니 결승시리즈에서 다시 만난 금성에 연승을 거두며 2
연속 우승, 정상을 지켰다. 고려증권의 유중탁이 MVP에 올랐고, 장윤창은 2년 연속
팬투표에 의한 인기상을 지키며 베스트6에 들었다.
금성에선 강두태와 홍기택이 베스트6에 선정됐다. 창단과 함께 했던 조배호 감독
은 책임을 느끼고 물러났다. 이후에도 금성은 대통령배는 물론 슈퍼리그와 인연이 없
었다. 1987엔 현대자동차써비스에, 1991년에 한양대에, LG화재로 소속사를 바꾼 뒤
인 1995 슈퍼리그에서도 현대차써비스에 패해 정상을 밟지 못했다.
2002 현대카드 슈퍼·세미 프로리그 최종결승전인 3차전에서도 삼성화재에 한 경
기도 따내지 못하고 3연패를 당해 우승 꿈을 접었다. 1970년대 후반 전성기를 누렸던
금성은 1980년대 이후엔 간간히 종별선수권대회와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는 것으로 만
족해야 했다.
현대자동차써비스는 1986년 제3회 대통령배 대회에서야 정상에 올랐다. 이후 3연
속 우승, 이때가 1차 황금기였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컴퓨터 세터’ 김호철이 합
류하고 이종경(199cm), 양진웅(202cm), 이채언(188cm), 노진수(188cm), 신대영
(193cm), 김형태(188cm), 박형용 등 공격선수들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1989년~1996년 다시 고려증권이 연속 우승을 포함, 네 차례 우승컵을 안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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