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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는 아니었다. 움츠렸던 기운이 생기를 찾듯 남녀 중·고등학교에서 배구부를 창
설해 배구는 인기종목의 반열에 들었다. 실업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광복 전,
철도국과 체신국의 두 팀으로 양분되어 있던 남자 실업배구는 일본인 주축이었던 체
신국이 자연 해체되고 철도국만 남아 있었다.
남선전기의 배구부 창설은 본격적인 한국 실업배구 시발점이 되었다. 팀 창단 산파
역은 신현수, 안종호가 맡았다. 배구선수 출신인 성희수, 박수진을 가담시키고 남전
직원 가운데 정찬모, 이정근, 홍순근, 김종웅을 뽑아 팀의 틀을 갖추었다. 1946년 전
국체전에서 우승한 남선전기엔 구연묵과 이상용도 합류해 1947년 전국선수권대회에
서 운수부팀(철도국)을 3?2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전국체전에선 1948년까지 3년 연
속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전력배구단이현재와같은배구팀의모습을제대로갖춘것은 1961년 7월이후이
다. 1898년 설립한 경성전기, 1918년 설립한 남선전기, 1943년 설립한 조선전업이 통합,
한국전력주식회사로 발족했고, 이 때 많은 선수들이 보강됐다. 곽동팔, 이연백, 김인수,
손영완, 이규소, 정선흥, 박진근, 양인택, 김종운, 서반석, 강백형, 김종운등이그들이다.
이후 1969년까지 육군 CIC, 보안사 등 군팀의 강세 속에서, 그리고 충주비료, 봉명
광업, 충북시멘트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우승권에서 맴돌았다. 1960년대 중반 임태
호, 김영환, 김영남, 김영대, 정광수 등 국가대표 선수가 한국전력 소속이었다.
1960년대엔 남자 실업배구계의 부침이 심한 가운데 팀의 수명도 풍전등화였다. 모기
업의 운명에 따라 생겼다 사라지는 팀들이 많았다. 1964년엔 10개 팀이 대회에 참가했
2003년 슈퍼리그에 출전한 한국전력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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