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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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동차써비스가 첫해 종별선수권대회, 박계조배 대회, 2~3차 실업연맹전, 전국체
전 우승으로 5관왕에 올라, 강두태, 이범주의 활약에 힘입어 1차 실업연맹전과 신춘
실업연맹전에서 우승해 2관왕에 그친 금성을 압도했다. 금성, 고려증권, 현대자동차
써비스의 3강시대로 지각변동이 시작된 것이다.
금성은 1992년 8월, 소속을 금성사에서 계열사 LG화재로 바꾸며 팀 이름도 변경했
다. 1984년 제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에 참가한 금성의 선수들은 엄한주(성균관대 교
수, 아시아연맹 SOC위원장), 강두태(작고) 이범주, 엄종석, 이용선, 김영철, 은흥기,
김광태, 최봉호, 강종구, 신일균, 강태구, 이정철, 김찬호 등이다.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써비스
1983년 신생팀을 갈망해온 남자 실업배구계에 한꺼번에 두 팀이 창단하는 경사가
났다. 1월 12일 고려증권배구단이, 2월 1일엔 현대자동차써비스팀이 창단식을 가졌
다. 가뭄에 단비였다.
대한배구협회는 경기대 국가대표 거포 장윤창(193cm)과 인하대 유중탁(188cm) 문
용관(190cm), 김상권(185cm)에, 서울대 전 국가대표 김인옥(184cm), 이원재(192cm)
까지 한꺼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에 맞춰, 전년도부터 팀을 창단할 기업을 찾고
있었다. 마침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란 대형 국제대회 유치로 스포츠 친화적인 분위
기가 무르익고 있을 때였다. 고려통상주식회사 그룹은 흔쾌히 배구단 창단을 받아들
여 그룹 내 고려증권 소속으로 배정했다.
고려증권의 창단에 직접 관여했던 당시 오관영 단장은 그때 비화를 이렇게 증언한
다. 오 단장은 그때 15년의 교직생활(환일고 교사)을 털어버리고 고려통상주식회사
계열사인 동광제약 총무부장으로 재직하며 KBS 배구 해설가로 활약할 때였다.
“1981년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난 뒤 전두환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불러 팀을 하나씩 맡으라고 지시를 하자 고려통상의 이강학 회장이 어떤 팀을 만들면
좋겠느냐고 상의를 하더군요. 그래서 주저 없이 내년에 경기대 인하대 서울대를 졸업
하는 선수들 8명에다 국가대표 이규소 감독과 최종옥 코치만 잡으면 곧 우승할 수 있
다면서 서슴없이 배구팀 창단을 건의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이강학 회장은 모두를
스카우트하면 팀을 창단하고 그 가운데 한명이라도 못 데려오면 포기하겠다고 하더
군요. 소위 All or nothing이었습니다.”(오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