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56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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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CIC 독주시대
우리나라 배구가 전란의 혼란 속에서 명맥을 지켜 가는데 군(軍)팀의 역할은 대단
했다. 여러 사단 조직이나 작은 일선부대에서 경쟁적으로 배구팀을 육성하는 가운데
한 때 흩어졌던 선수들을 다시 규합하여 꿈을 키워가는 터전을 마련해 준 것이다. 군
배구의 전통은 6.25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반세기가 넘도록 면면히
계승 발전되었으니 한국 배구의 생명선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할 만 하다.
이 가운데 CIC, 또는 방첩부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육군 특무부대의 명성은
흔히 말하는 ‘무적함대’ 그대로다. 당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할 만큼 위세
당당했던 특무부대장 김창룡은 어떤 방법으로든 1등을 해야 한다는 엄명과 함께 배구
팀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1960년 병기학교, 병기기지 사령부, 60병기 대대의 경합시대를 거쳐 육군
방첩부대가 탄생한 이래 10년 가까운 세월 CIC 전성시대가 이어졌다.
CIC 명칭만 해도 방첩대에서 보안사로 넘어가기에 앞서 처음 군부 실세인 김재규
6관구사령관(당시 소장)이 지어준 것을 1960년대 중반 윤필용 부대장이 새로 취임하
면서 보안사로 명명했으며 1970년 취임한 강창성 보안사령관 역시 남다른 배구 사랑
열정을 보여 수도경비사(맹호 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긴 윤필용과 승부 과열의 마찰
을 빚기까지 했다.
CIC는 1952년부터 1958년까지 7년 동안 다른 팀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됐고
1970년대 이후론 육군보안사라는 이름으로 제2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중심에는 두
전장에서
태동한 군 배구
CIC배구팀의 초기 선수들. 뒷줄 오른
쪽부터 손영완, 장경환, 백대명, 김명
수, 두 사람 건너 유붕수, 곽동팔. 앞줄
오른쪽부터 김만용, 김생수, 유정웅, 김
춘현, 오만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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