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휩쓰는 파란을 일으켰다. ‘국세청을 위한 해’였다. 각 팀의 에이스들이 상비군 훈련에
묶여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고 해도 실업 1년차의 패기 가득한 반란으로만 보기엔
여운이 컸다.
1968년 가을, 체신부 팀이 해체되자, 박만복 감독은 재빨리 동명여고 출신인 에이
스 김혜숙(173cm), 이인숙(171cm)의 스카우트에 성공, 높이와 공격파워를 보강했다.
또 황순옥(169cm)을 세터로 기용하며 평균 신장이 2cm이상 높아졌고, 전년도 최우
수선수 박정실(162cm)과 우수상을 수상한 이상안(161cm)의 두 왼손잡이 공격이 날카
로움을 더 할 수 있게 됐지만 팀워크를 다지기엔 충분치 못한 시간이었다.
2년차 징크스도 작용한 듯, 1969년 국세청은 4차 실업연맹전에 가서야 강적 동일
방직을 3-2로 힘겹게 물리치고 우승했다. 그런데 1, 2차 실업연맹전 우승팀인 제일
은행이 3차 연맹전(준우승)을 마치고 갑자기 해체됐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선경직물 창단에 합류했다. 그러나 팀의 에이스 김영자(171cm)
는 우여곡절 끝에 국세청으로 이적했다. 1970년 1월 최이식 감독이 취임했을 때, 국
세청은 최숙(175cm, 중앙여고 졸), 길송애(172cm, 덕성여고 졸)까지 가세, 창단 당시
의 최단신팀이 아니었다.
최 감독 스타일의 섬세한 조직배구가 꽃을 피울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다. 상비군
에 김영자, 김혜숙, 황순옥, 길송애 등 4명이 뽑혔고 그해 말 방콕 아시안게임에는 김
영자, 김혜숙이 참가했다.
1970년 1차 실업연맹전(3월)에서 5전승으로 우승한 데 이어 제1회 대통령배 전국대
회(4월)에서 국세청은 6전 전승으로 우승, ‘무적의 팀’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2차, 3차
실업연맹전도 우승했다. 박계조배 대회에서만 산업은행, 동일방직과 서로 물고물리
며 1승1패를 기록, 세트득실률에 밀려 3위를
했을 뿐이다.
1971년 국세청에는 여고생 국가대표 조혜
정(165cm, 숭의여고)이 가세했다. “다른 팀
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세청 한 팀에
서 국가대표 몇 명이 나오도록 선수들을 키
우겠다.”던 창단 당시 이철성 단장의 목표
가 착착 진행되어 가는 중이었다. 1971년 국
세청은 종합선수권대회, 1~3차 실업연맹전,
1972년 무적시대의 국세청배구단. 아
랫줄 가운데가 조혜정 선수.
배구 주요 활동_
실업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