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68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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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는 호남정유와 한일합섬이 돌풍을 일으키며 미도파와 현대의 양강시대
에 마침표를 찍었다.
미도파는 주전선수들이 나이 들고 부상까지 겹쳐 쉽사리 회복하지 못했다. 현대는
1985~1990년 대통령배대회에서 다섯 차례 우승하며 정상 자리를 지켰으나 늘 미도
파를 의식해야 했고, 1988년부터는 호남정유의 도전과 견제에 불안감을 느껴야 했
다. ‘타도 미도파’를 외치며 정상 도전에 성공했던 현대도 수많은 대표선수들을 배출
했다. 김애주, 이병화, 임혜숙, 김영숙, 이은경, 김정순, 정금선, 김송은, 김종순, 지
경희, 염정미, 유영미, 이인숙 등이다.
호남정유의 9년 호령
1970년 9월 창단한 호남정유의 시작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68년 대전방직 배구팀을 인수, 의욕적으로 출범했던 경성방직이 면방산업의 불
경기로 인해 돌연 해체를 선언하자, 배구협회(이낙선 회장)가 인수기업을 찾아나서,
호남정유에 적극 요청해 창단이 이루어졌다.
감독은 배구계 원로 장동은이. 코치는 김진희가 맡았다. 대표선수인 박금숙, 허주
옥을 비롯해 선수들은 모두 경성방직 출신이었다. 창단 초기엔 전열을 채 가다듬지
못해 변변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호남정유의 창단은 여자 배구계에 새로운 라이벌 구도를 예고했다. 정유업계의 라
이벌 석유공사와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언론에서는 유류업계의 라이벌 관계임을 부
각시켰다. 번번이 패하던 선수들의 투지에 불을 당겼다. 선수들 대부분이 대전방직을
거쳐 경성방직 유니폼을 입었던 터라 당시 최강자로 불리던 동일방직에 도전하며 투
지를 다졌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끝내 동일방직을 물리쳤던 근성있는 선수들이었
다. 당시 석유공사는 최강 국세청을 꺾기도 하며 1971년에는 국내 대회 3관왕에 오르
는 등 정상권에 진입해 있었다.
창단 이후 2년 동안 최하위에 머무르면서도 라이벌전에서만은 이기려고 했던 선수
들을 자극한 사건은 스카우트 대결에서도 있었다. 실업연맹이 국세청의 독주를 막고,
실업팀들의 전력 평준화를 위해 선수 선발에 드래프트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창단 이
후 바닥권에서만 머물던 호남정유가 여고 최강팀 풍문여고와 최근 2년간의 연고관계
를 주장해 실업연맹이 이를 받아들이자 석유공사는 반발하며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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