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60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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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다’는 각오를 느꼈으리라.
해군의 플레이는 확연히 달랐다. 우익의 선우양국, 중앙의 박진관, 좌익의 신기하,
이들 3명이 호흡을 같이 하며 펄펄 날았다. CIC는 해군의 블로킹 벽에 막히자 당황한
기색이 역연했다.
첫 세트는 21-19로 해군 승리. 2세트선 18-20으로 몰린 상황에서 상대 범실을 유
도한 끝에 22-20으로 역시 해군의 것. 이렇게 종합우승은 해군에 돌아갔고 육군은
너무 믿었던 CIC를 원망해야 했다. 이것이 해군의 마지막 우승이었다.
그날 이후 박계조가 떠난 해군은 쇄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해군 주장 이상룡도 38세
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선우양국도 떠나버렸다.
그 뒤를 이은 것이 부산세관이다. 군부대를 떠난 핵심 인물들을 끌어 모은 부산세
관이 최이식, 박신식, 오재월 등을 주축으로 하여 전국 제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금융 3팀의 도약기
국내 여자 실업배구의 서막은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직장스포츠 팀이 하나둘씩 등장하는 시대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여 남자 위주의
실업배구에 여자팀이 합류한 것이다. 한국배구가 아시안게임의 문을 노크하기 시작
한 시기와 맞닿아 있다.
1969년 진해에서 열린 제24회 종별선
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해군 배구단.
여자 실업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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