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
그 선두주자가 산업은행, 조흥은행 그리고 제일은행 3팀이다. 이들의 출범에 힘을
얻어 1962년 최초의 일본 원정(조흥은행)에 이어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의 주역이 바로
이들 3개 팀에서 나왔다. 그 뒤를 이어 대한실업(중앙정보부)과 국세청이라는 정부의
조직이 참여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정부는 정보부 산하에 양지축구단과 대한실업 배구단을 배치하여 직접 육성할 만
큼 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만큼 대한실업 배구단은 창단 후
조흥은행과의 빅 매치 시대를 거쳐 3년 만에 꿈을 접고 사라지고 만다.
1962년 거의 같은 시기에 동시 출범한 조흥, 산업, 제일 등 은행 3강은 서로 물고
물리는 혼전양상을 띄우며 여자농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에 발맞추어 실업배
구연맹전이 출범하고 국제대회에 대표선수를 배출하는 등 활기를 띄게 되었다.
국내 여자실업배구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이즈음 최강자의 면모를 보여준 선발주
자는 역시 저력의 조흥은행이다. 김명수 감독과 박진관 코치를 일찍 확보한 뒤를 이
어 김영봉을 주장으로 한 경기대, 이화여고, 풍문여고 출신들로 안정된 전력을 구축
했다. 그 면모를 보면-
당대 최고의 공격수인 이춘일을 비롯 김군자, 홍순옥, 주방자, 홍선화, 조남순, 김
계환, 김숙자, 이봉인 등으로 이듬해 1963년에 실업연맹전 전승 우승을 이끌 만큼 막
강진용을 구축했다. 그 결과 이 해 대한체육회가 주는 올해의 최우수단체상(MVP)의
영광도 안았다.
조흥은행과 대한실업의 양분(兩分) 시대라고 할 수 있는 1962년 판도에 대해 우수
팀 리그를 주최한 당시의 경향신문은 이러한 실업리그의 저력과 아시안게임의 성과
를 바탕으로 머지않아 일본과 겨룰만한 가능성이 보인다고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기
도 했을 정도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주전 에이스
였던 대한실업의 서춘강의 맞수는
역시 조흥의 간판공격수 이춘일이
다. 전북 화호여중, 군산여상을 거쳐
경기대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이춘
일은 아시아 무대에서 돋보이는 활
약을 했으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
었다.
1960년대 여자 실업배구는 금융팀이
이끌었다. 1972년 산업은행 여자배
구단.
배구 주요 활동_
실업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