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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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고려증권 남자배구팀이었다. “고려증권이 창단되면서 금
성통신이 럭키금성으로 팀 이름을 바꾸고 대한항공이 재창단, 여기에 상무와 한국전
력이 가세하면서 1984년 슈퍼리그의 전신인 대통령배가 시작되고 남자배구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배구인으로서 배구팀을 창단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남자
배구가 중흥의 불씨를 피울 수 있었던 것은 현대자동차써비스의 정덕화 단장 덕분입
니다. 정 단장이 의욕적으로 현대를 지원했기 때문에 고려증권과 라이벌이 됐고 이것
이남자배구가인기를얻기시작한계기입니다.”(오관영)
장윤창과 유중탁 등 대표선수들도 신생팀에 호의적이어서 선수 확보와 스카우트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국가대표 출신의 우철우 코치와 장윤창, 유중탁, 김상권, 김인옥,
이원재, 남태성(181cm, 서울대)에 경기대의 나정균(194cm), 강재규(188cm)까지 합
세, 10명의 선수로 창단식을 가졌다.
조용히 창단 준비를 해오던 현대자동차써비스는 고려증권 창단으로 서둘러 창단
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 확보가 문제였다. 눈독을 들였던 장윤창을 두고 줄다
리기가 있었다. 전해 4월과 6월에 가진 두 팀의 창단 발표에 장윤창이 모두 들어있는
해프닝이 벌어졌으나 장윤창이 곧바로 고려증권 입단을 밝혀 파문은 가라앉았다.
현대자동차써비스는 인하대 졸업반 문용관(190cm)을 잡았지만 우수선수는 금성과
고려증권에서 대부분 스카우트를 마무리해 조선대, 부산대, 강원대 선수들 5명을 확
보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가 집중적으로 스카우트에 공을 들인 선수는 해외에서 활동
하고 있던 이인과 강만수였다.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대회 한국 우승의 주역이었던 ‘중앙 속공의 달인’ 이인
1989년 제6회 대통령배대회 결승에서
현대차써비스를 꺾고 우승한 고려증권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배구 주요 활동_
실업배구
1...,341,342,343,344,345,346,347,348,349,350 352,353,354,355,356,357,358,359,360,36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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