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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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들의 비난과 욕설이 쏟아졌고 콜라병까지 날아들었다. 연맹은 부랴부랴 남고부 경
기를 앞당겨 진행하고, 여고1부 결승토너먼트 대진은 원래대로 되돌렸다. 조경숙의
자격 시비는 추후 조사키로 하고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다.
끊이지 않는 판정 시비
1980년 7월 전국체전 대표 자리를 놓고 광주 라이벌 광주여상과 송원여고가 대결
했다. 경기 도중 광주여상이 석연찮은 심판 판정에 반발, 경기를 포기해 전국체전 출
전권은 송원여고에 돌아갔다. 전남협회는 이 소란에 대한 책임으로 광주여상의 최경
(崔炅) 감독을 영구제명, 박홍표(朴洪表) 코치와 장정호(張正鎬) 주무는 무기한 자격
정지, 팀에 대해서는 경고처분을 내렸다.
광주여상은 이에 반발, 배구협회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으나 한 달여 만에 반려되
자 팀 해체를 경고하고 나서 한동안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광주를 대표하는 두 팀의 첨예한 갈등은 화합하기 어려운 우리 스포츠계와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노출한 대표적인 예다.
선수 수급의 불균형
- 타 시도 진출 규제의 부작용
1980년 곳곳에서 학교 배구팀의 해체 소식이 들려왔다. 학원 배구의 침몰 위기였
다. 시도 교육감의 허가 없이는 타 시도 선수를 스카우트할 수 없도록 규제한 교육 당
국의 정책과 대한체육회 등록지침에 의해 스카우트에 실패한 팀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전통의 명문 대신고와 덕성여고가 그런 처지에 빠졌다. 당시 서울에
는 여중 1부팀이 5개. 여고팀이 8개였고, 경기도에는 중학팀 11개에 고교팀 2개로 극
심한 불균형 상태였다.
1971년 팀을 창단 1979년부터 32연승을 기록하면서 전국 대회를 석권하던 여고 배
구 최강한일여실도 마찬가지였다. 한일여실은 소재지 경남에서 유일한 마산제일여중
선수들이 마산제일여고로 진학하고 타 시도에서는 선수를 뽑아올 수 없어 선수 공급
원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어쩌면 이전까지의 무분별한 선수 스카우트 경쟁이 이 같
은 화를 부른 셈이었다.
배구 주요 활동_
성인 배구의 요람,
학원 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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