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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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이듬해엔 3개 팀 뿐. 1968년에도 10개 팀이 활동했으나 1969년 대회 참가팀은 해
군, 보안사를 제외하면 3개 팀(충북시멘트, 체신부, 한국전력)뿐이었다. 1970년 창단한
대한항공과 보안사가 1970년대 전반기 한국전력의 정상 정복에 걸림돌이었다면 1970
년대 중반 이후엔 금성통신이 대형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면서 한국전력의 정상가는 길
을가로막았다. 그런데도꾸준히남자배구의버팀목이되어준팀이한국전력이다.
1970년대를 거쳐간 한국전력의 국가대표 선수로는 김영대, 김길태, 우철우, 이인,
이선구 등이다. 1983년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써비스가 창단되면서 남자 실업배구
판도는 양분됐다. 1982년 한국전력공사로 탈바꿈하면서 한국전력 남자배구단은 스카
우트 취약팀이 되었다. 이 무렵부터 대기업에서 물량공세를 펴면서 선수 스카우트비
가 치솟게 된 탓이다. 1984년 출범한 대통령배배구대회와 1995년부터 이어진 슈퍼리
그에선 한 차례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종별선수권대회에서는 1989년 1990
년 연속 우승을 포함, 6차례 정상을 밟았다.
침체기를 겪으면서도 전통 있는 팀으로 저력을 과시해온 한국전력은 1989년 이후
배구협회 회장사로서 배구 발전에 기여해 왔다.
국가대표 선수의 배출은 물론, 수많은 배구 지도자들을 길러냈다. 신치용, 최원묵,
차해원, 강화수, 이근재, 최선기, 정광호, 한영수, 김상수, 고태진, 정의택, 김동열,
공정배, 최보원, 정재숙, 이훈희, 성기선, 장병석, 김종균, 신영철, 박희진, 천성구,
강용래 등이 80년대 한국전력을 거쳐간 선수들이다. 김성용, 김성호, 차승훈, 노민
하, 홍세봉, 유호석, 유호, 김철수, 이수동, 이병희, 한대섭 등은 1990년대와 2000년
대 초반 한국전력 코트에 땀방울을 뿌린 선수들이다.
2016 V리그에 참가한 GX칼텍스킥스의 이선구 감독이 60~70년대 한국전력에 몸
담고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렸으며 한국전력 빅스톰 사령탑에는 80~90년대를 누볐
던 명세터 신영철이 친정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전력은 프로리그에 나서기 전까지 장구한 세월, 부실한 지원 아래 패배를 무릅
쓰며 성인 배구를 구성하고 뒷받침했다.
1970년대의 스타 보고(寶庫), 금성
1970년대 남자실업배구를 양분했던 팀은 육군보안사와 금성통신이었다. 전반부가
육군보안사의 전성시대라고 한다면 후반부는 금성통신의 독주시대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