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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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6월 창단한 금성(회사명 금성통신)배구단의 모체는 체신부였다. 체신부에
통신부품을 납품하던 금성통신이 팀 운영에 어려움 겪고 있던 체신부 팀을 고스란히
인수해 창단했다. 체신부 팀은 1973년과 1974년 종합선수권대회 연속우승과 1975년
3차 실업연맹전 우승팀이었다. 김건봉, 김충한, 조재학, 정문경의 국가대표선수 4명
을 보유한 최강팀이었다. 석경홍, 김무공, 최영대, 박양수 등 8명이 창단 멤버, 감독
은 조배호가 맡았다. 창단 3 개월만에 처음 출전한 제31회 종별선수권대회회에서 육
군보안사를 따돌리고 우승하면서 6년간의 독주시대를 열었다. 1981년까지 우승 17
회, 준우승 2회로 국내 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1979년과 1980년이 황금기로 1979년
엔 종합선수권대회, 종별선수권대회, 1차 실업연맹전, 전국체전 우승의 4관왕이었고
1980년에도 종합선수권대회, 종별선수권대회, 전국체전 우승에 이어 1~2차 실업연
맹전과 박계조배 대회에서 우승, 4개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며 한해 6개 타이틀을 움
켜쥐었다.
황금기 금성의 선수구성은 김충한, 석경홍, 후국기, 강만수, 이희완, 강두태, 안병
만, 유경식, 문광일, 박양수, 최형태, 김호철로 전
ㆍ
현 국가대표선수 7명이 포진되어
있었다.
금성은 81년 이후 육군통신교의 대표선수 엄한주, 차주현까지 영입해 막강한 전력
을 과시했다. 그러나 실업맞수로 생각했던 종합화학이 해체되어 남자실업배구는 위
기를 맞는 듯 했다. 금성과 대결을 벌일만한 상대는 이범주, 문용관, 유중탁의 인하대
와 장윤창이 버틴 경기대 정도였다. 마침 1983년 초 경기대와 인하대에서 대표선수들
이 졸업하는 것을 계기로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써비스 두 팀이 한 달 간격으로 창단
되었다. 금성의 독주가 막을 내린 것도 1983년. 강만수, 문용관, 이인을 받아들인 현
1981년 배구인의 밤에서 조석래
회장이 금성의 후국기(오른쪽)선수
에게 상패를 수여하고 있다.
(사진 왼쪽)
1981년 배구인의 밤에서 금성의 주포
강두태(오른쪽)가 조석래 회장으로 부
터 우수선수 표창을 받고 있다.
(사진 오른쪽)
배구 주요 활동_
실업배구
1...,339,340,341,342,343,344,345,346,347,348 350,351,352,353,354,355,356,357,358,35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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