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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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하겠다고 선언했다.
배구협회는 사태의 장본인 임영찬 코치에게 2년간 자격정치 처분을 내렸다. 태광
산업도 박승수 감독을 해임하고 유봉 측에 사과해 사태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박승수 감독은 임영찬 코치의 계획에 동조한 사실이 없음이 뒤늦게 확인되
어 오히려 유봉여고 지도를 맡았다가 김길자, 김미봉, 마금자 등 졸업예정 선수들과
함께 1973년 11월 대우실업 팀을 창단했다. 유봉여고는 이규명 코치를 후임으로 불러
들여 팀 활동을 계속했다.
파행적 대회 운영
- 비상식적인 결선 대진추첨
학교 체육을 맡고 있는 교사들의 대회 운영에도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요소가
적지 않아 불화를 자초하고 비판의 도마에 오르곤 했다.
1975년 4월 춘계 중고연맹전에서 여고부 A~C조 1차리그를 통과한 6강은 뒤늦게
대진 방식이 바뀌어 1차 성적에 관계없이 추첨으로 결승토너먼트를 치르게 되었다. 1
차리그 1, 2위를 구분 않고 6개팀 가운데 추첨에 의해 두 팀은 곧바로 준결승에 오르
고 나머지 네 팀은 준준결승전을 치러 4강 진출을 가리게 된 것이다.
이 대진 추첨에서 부산 남성여고는 1차리그에서 이미 이긴 바 있는 덕성여고와 준
준결승에서 다시 대결케 되었다. 남성의 박응호 감독은 대진 추첨의 잘못과 함께 덕
성 선수 조경숙의 자격을 문제 삼아 항의했고 경기는 두 시간 가까이 중단되었다. 관
중고등부 경기 중 작전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