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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학교 팀들은 서울과의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리며 여러 차례 부침을 거듭했
다. 동일계 중학교에서 키워낸 노른자위 선수들을 서울 고교에 빼앗겨 좋은 성적은
고사하고 팀 유지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다. 1968년 2월 동일계 중학 유망주들을 모
조리 서울 고교팀들에게 빼앗긴 남성여고와 부산여고는 격노해서 항의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끝내 팀을 해체하기에 이른다.
전통의 명문 남성은 1969년 이종석 교장의 부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부산시
배구협회장을 역임한 이 교장이 배구부를 부활시켰고, 팀은 1970년부터 정순옥, 박
정혜를 주축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불과 3년 만에 남성은 여고 정상으로 고공비행,
1972년부터 전국체전 4연속, 1973년부터 춘계연맹전 3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김화
복, 김순득, 김미연 등이 주축을 이룬 1975년에는 종별선수권, 춘계연맹전, 대통령배,
TBC컵, 전국체전 등 5개 대회를 휩쓸었다. 남성은 2000년대 들어서도 왕성한 활동
으로 윤혜숙 김세영 임효숙 박정아 양효진 등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양성해 냈다.
춘천 유봉여고도 간간이 서울팀들을 위협하며 종별선수권, 전국제전 등에서 우승
했으나 큰 세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70년 초반 유봉의 주축이던 마금자
김길자 김미봉은 대우실업 창단 멤버, 국가대표로 큰 활약을 보였고 이후에도 함금
희, 윤옥남 등이 우승의 경력을 보탰다.
광주의 조대여고는 백명선 주미심 홍봉순이 뛰던 1973년과 1974년 종별선수권, 추
계연맹전, TBC컵에서 우승, 반짝 정상을 누렸으나 권좌를 오래 지키지는 못했다.
중고교 대회의 시상식장
배구 주요 활동_
성인 배구의 요람,
학원 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