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듭했으며 상대 블로킹 때 오버네트를 유도하는 낚시 작전이나 수비에서 손을 내밀었
다 빼는 교란 전술, 깎아서 옆으로 쳐내기 등 변칙기술의 완성도를 높여 나갔다.
제1고보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제2고보, 곧 경복중학의 창설 주역은 안종호의 동향
친구인 박문희다. 처음에는 교내 활동에 그치는 듯했으나 이홍식(李弘植), 현동주(玄
東柱, 가수 현인) 등이 합류하면서 경기를 위협하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경
복 인맥은 신경수(申經秀), 구연묵(具然默), 장동규(張東奎), 윤헌식(尹憲植)으로 이어
지고 다시 김명환(金明煥), 이재창(李載昌)이 등장하며 광복을 맞았으나 경기의 아성
을 뛰어 넘지는 못했다.
경복 인맥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두말할 것 없이 구연묵이다. 충청도 청
양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구연묵은 보전 황금기에 이르기까지 공격의 핵심 축으로
돋보이는 활약을 했으며 여기에 신경수와 장동규가 주득점원으로 활약했다. 장동규
는 훗날 구연묵 등과 함께 남전시대를 열어가는 핵심이 되었다. 이러한 경복 인맥은
경기, 경동에 뒤질 것 없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나 수비 전문인 김명환, 이재창 이후로
후진이 없어 그 전통이 오래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서울 3강 시대를 만든 이들이 결국 한국배구 근대화의 토대를 다졌다 해도 지나침
이 없을 것 같다. 경기, 경복, 경동중학은 연대별로 다소의 간격은 있으나 한 시대를
펼쳐가는 동반자가 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런데 이들을 겨냥한 지방의 도전
자는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 대표적인 영남 맹주가 동래중이다.
1946년 가을 전국체전 무대에 나타난 동래중학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경
기중학은 준결승에서 대전공을 잠재운 기세를 타고 동래의 도전을 2-0으로 방어하
1973년 모스크바 유니버시아드팀 감
독으로 출전했을 때의 구연묵(왼쪽에
서 두 번째). 선수 이인(세 번째)의 생일
을 맞아 손영완 코치(왼쪽 첫 번째), 김
택수 대한체육회장(네 번째) 등과 함께
축배를 들고 있다.
배구 주요 활동_
성인 배구의 요람,
학원 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