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22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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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제1고보, 제2고보 선수들이 다시 힘을 모은다면 못 넘을 산이 없다는 확신에 차 있
었다.
보전의 경쟁 상대는 다른 대학이 아니라 일본인 일색인 경성제대 예과나 경성사범
이었다. 보전은 이들을 제압함으로써 명실상부 전국 최강의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었
다. 일본 학교와의 경쟁 무대로 주목을 받았던 1939년 조선신궁경기 배구와 농구에서
보전과 연전은 서로 희비가 엇갈리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먼저 농구 준결승에서 연전
이 보전을 35-34, 단 1점차로 물리치고 결승에서는 신흥을 제압해 우승을 차지했다.
배구 대학전문리그에서는 보전이 세브란스전문을 누르고 결승에 올라 일본 학생들로
구성된 경성제대 예과를 2-0으로 완파하고 정상에 우뚝 섰다.
당시 보전 선수들은 학교 측의 배려로 오전수업만 끝내면 점심시간 이후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었으므로 연습 상대를 찾아 장안을 돌아다니는 때가 많았다. 예컨대 성
동역에서 전차를 타고 동대문을 거쳐 용산역에서 하차, 조선철도국 코트를 찾아 연습
하는 경우가 많았다. 철도국 코트는 그냥 모래바닥이 아니라 오랫동안 소금을 뿌리고
롤러로 다져 놓았기 때문에 마치 테니스 코트처럼 단단했다. 이곳에서 철도국 팀과
연습을 거듭하면서 보전의 실력은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조선
신궁경기에서 최강 성대(京城帝大) 예과를 제압하고 우승하는, 신생팀이라 할 수 없
는 놀라운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보전의 간판스타인 안종호와 장동은, 구연묵은 오사카에서 열린 전일본도시
대항전에 출전 중이었다. 경성 대표는 곧 조선 대표와 같아서 자유 활동이 어려운 상
황이었음에도 이들은 보전이 조선신궁경기 결승에까지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광복 이전 전성기의 보성전문 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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