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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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풍문여고 등의 도전도 가볍게 따돌렸다. 이춘일, 김군자(金君子), 김영봉(金英鳳)
등은 경기대 진학 후에도 맹위를 떨쳐 1961년 조흥은행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기
까지 한국 여자 배구의 버팀목이 되었다.
이들의 뒤를 이어 1961년 성신여고에 거포 서춘강(徐春江)이 등장, 졸업 후에 대한
실업에 입단해 여자부 주도권을 놓고 조흥은행과 대한실업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
다. 이례적으로 중앙정보부가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다면서 양지(陽地) 남자축구팀과
함께 창단한 여자배구팀 대한실업(大韓實業)에는 한국 여자배구의 대들보이자 부동
의 에이스로 성장한 서춘강을 비롯, 문경숙(文敬淑, 전 제일은행) 등이 창단멤버로 참
여해 화제가 되었다.
서춘강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주장으로 참가하기까지 대표 자리를 지켰으나 올
림픽이 끝나자마자 결혼을 위해 일찍 코트를 떠나 아쉬움을 남겼다. 같은 성신 출신
으로 대표팀 주전 세터 자리를 지켰던 문경숙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까지 대표팀
주장을 맡으며 큰 언니 역할을 수행했다.
6·25 전란에 이은 정치사회적 혼란이 잦아든 1960년대 들어서며 학원 배구의 양
상도 크게 달라졌다. 공사립 명문교들이 점차 배구 코트에서 자취를 감추고 새롭게
스포츠 육성에 눈뜬 사립학교들의 경쟁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표적
인 예가 서울의 4고교 정기대항전이라 하겠다.
봄의 축제
4고교 정기전
중고등부 배구대회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