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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일과
서춘강
여고, 충남 한밭 등이 의욕적인 모습으로 정상 도전에 나섰다.
1962년 여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화호(禾湖)여중이 배구 코트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전북 정읍군 신태인읍에 있는 화호여중은 학생 수 150명에 불과한 작
은 사립학교였다. 가난해서 운동화를 사 신을 수 없어 맨발로 뛰던 이들이 제16회 전
국종별선수권대회에 나와 결승에까지 진출, 명문 부산여중을 2-0으로 가볍게 제치
고 꿈같은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지켜본 관중이나 배구인들은 어리둥절할 수밖
에 없었다.
이 감격적인 상황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화호라는 학교 이름이 전국에 널리 알려졌
다. 볼 하나 제대로 만져보지 못할 정도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며
서울과 부산의 명문 팀들을 제압했다는 사실은 모든 지방학교 선수들에게 용기를 북
돋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들은 학교 숙직실 옆에 방 하나를 구해 합숙하면서 등교
전, 그리고 방과 후 하루 4, 5시간의 맹연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육관이 있을 리
없고 교실 한편에 판자를 막아놓고 하루 평균 1백 개 이상의 서브 연습을 했으며 꽁
보리밥도 부족해 끼니를 거르기도 여러 번이었다. 이러한 눈물겨운 사실이 알려진 후
한동안 후원과 격려의 손길이 이어져 모든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도시 중심으로 전파된 농구와 달리 지방학교에 널리 뿌리를 내린 배구는 이처럼 고
난 속에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 세계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실내 체육관이 귀하던 시절 하루 종일 햇볕에 그을린 당시 여학생 선수들의 건
강한 모습은 한국 배구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저력의 한 단면이었다.
여자 배구의 새 바람으로 기대와 주목을 받은 팀으로 화호여중 이외에도 군산여상
을 주목할 만했다. 광복 이후 한 차례 전국 우승을 거머쥔 바 있는 군산여상은 1959년
또 한 번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처음으로 6인제를 채택하여 종합선수권대회에 포함
시킨 때여서 지방 팀들의 의욕도 대단했다. 군산여상은 경기대와 결승에서 양사이드
의 강력한 오픈 공격과 속공 등 남자를 능가하는 공격력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특히
이춘일(李春日)의 공격 파워가 대단했고 서브 성공률도 완벽에 가까워 많은 찬사를
들었다.
군산여상의 기세는 한동안 이어져 서울의 수도여고, 성신여고, 이화여고, 중앙여
배구 주요 활동_
성인 배구의 요람,
학원 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