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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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년상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부각과 목표 설정을 위해 마련된 이번 대회는
남녀국민교 5, 6학년 및 중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하늘색 상의와 녹색바지
오랜지색 스타킹으로 복장을 통일, 전국체전처럼 화사한 모자이크가 펼쳐지는 대신
녹색의 무브먼트가 넘쳐 흘렀다.(중략)
민관식 문교부 장관의 개회선언에 이어 거대한 스포츠 소년단 단기가 오색풍선과
비들기가 비상하는 가운데 게양된 후 박정희 대통령은 친히 서울 소년단 대표 김지수
(배재중)군에게 단기를 수여했으며 삼천명으로 구성된 혼성합창단의 우렁찬 대회찬
가가 대회장을 메아리쳤다.》(하략)
(동아일보 1972년 6월 16일자 중에서)
소년체전의 등장은 우리나라 배구의 저변을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초등부 경기가
소년체전에 포함됨으로써 저변 확대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기술 수준이 향상됐다. 각
시도들은 종합채점제로 열리는 소년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초등부 배구
팀 육성에 정성을 기울인 덕분이다. 이와 함께 전국체전에서는 거의 찬밥에 가까웠던
중등부 경기도 덩달아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전통적으로 전국 무
대를 휩쓸었던 전남과 경남에서는 일부 초, 중학교들 사이에 창단 붐이 일기도 했다.
지방 강세로 전국이 평준화 현상 두드러져
소년체전의 출범으로 가장 큰 변화는 각 시도들마다 대표로 선발된 초등학교와 중
학교 팀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이었다. 즉 종전까지는 팀을 육성하는 학교가
모든 재정적인 지원을 도맡아 해야 하지만 소년체전 대표로 선정이 되면 각 시도 교
육청들이 직접 지원을 했다.
따라서 팀을 육성하는 학교들은 재정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어 시도 대표로 선발되
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덕분에 일부 선수 육성에 잡음이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
인 기량향상으로 지방 강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전국이 평준화되는 효과를 보
였다.
배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72년부터 2016년까지 총 45회의 소년체전을 치루
는 동안 남녀 초등부, 남녀 중등부 등 4개 부문에서 3연패(連覇) 이상을 한 학교는 단
한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2년 연속으로 우승한 학교도 총 12개교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