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42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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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부의 그늘, 폭력
- 억압된 생활의 분풀이(?)
국가대표주장으로, 감독으로큰몫을담당했던이인은고교시절한때선수생활포기
를심각하게고려했었다. 이유도알수없고견딜수도없는운동부내폭력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로 도 대표까지 지낸 이인은 청주 대성중에 진학한 후 키가
크고 점프력이 좋다는 이유로 배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서
울의 명문 대신고에 스카우트되어 갔으나 시도 때도 없는 상급생들의 매질에 질겁했
다. 대신고를 뿌리치고 대경상고에 입학했으나 또 다시 대신고에서 전학 온 선배들의
매질에 학교생활을 포기하고 집에 칩거했다.
이인은 당시 장갑순 코치가 집까지 찾아와 어른들에게 사과하고 달래는 바람에 다
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인은 3학년 때 이규소 코치의 지도로 비로소 배구를
제대로 배워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아시아의 거포로 불리던 강만수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중학 시절부터 체격
도 크고 운동을 좋아해 핸드볼, 축구, 배구를 오가던 그는 졸업을 앞두고 자진해서 성
지공고 배구부 합숙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1, 2학년 때는 배구 훈련보다는 밥 짓
고 빨래하는 일에 더 바빴다. 그런 가운데 툭하면 선배들의 기합을 받아 운동선수라
는 존재감을 찾지 못했다.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잡일과 기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같은 운동부의 폐단은 중고교 어디에서나 거의 일반화되어 선수들을 괴롭혔다.
때로는 지도자가 원하는 만큼의 플레이를 보이지 못한 선수들에 대한 징벌로, 때로는
선배가 후배에 대해 엉뚱한 분풀이나 심심풀이로. 심지어 성인 선수들이 소속된 실업
배구팀에서마저 폭력 사고가 빈발해 비판을 받아온 게 우리 스포츠계의 현실이다. 그
러나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부각되면서 배구를 포함한 스포츠계에서 상황은 많
이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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