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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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배 실업대회에서 우승했다. 대통령 및 영부인배 대회 결승과 전국체전 결승에서
만 석유공사에 패했다.
이듬해엔 일찍이 장신 유망주로 주목 받아온 유경화(172cm, 숭의여고 졸)와 윤영
내(171cm, 덕성여고 졸)까지 합류, 국세청은 상비군 6명으로 구성된 막강한 팀으로
진화했다. 매년 장신 유망주들을 스카우트, 넘볼 수 없는 ‘천하 무적팀’의 위세를 떨쳤
다. 1972년에도 제3회 대통령 및 영부인배 대회 우승과 4차 실업연맹전에서 우승하
는 등 맹위를 떨쳤다.
최이식 감독, 이창호 코치의 지도부 호흡과 유망 선수들의 성실성, 투지, 그리고 구
단의 지원이 강세를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었다. 1973년 대농으로 팀을 넘기기까지 6
년 동안 국세청은 190전 176승 14패의 전적을 기록했다.
애초국세청은국내배구의저변을넓히는활력이되고, 경직된관청의이미지를부드
럽게 하기 위해 여자배구팀을 창단했으나, 국내대회를 완전 석권하며 독주를 계속하자
오히려 강한 이미지를 더욱 부각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내부의 지적이 나오게 되었
다. 마침신흥그룹으로부상하고있던대한농산이팀인수를희망하자선수단을넘기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73년 6월 30일 세종호텔에서 국세청 여자배구단 해단식
겸대농여자배구단창단식이열려, 천하무적팀은고스란히대농으로옮겨갔다.
장신선수를 찾아라
1975년 호주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배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대표가 일본에
15-4 15-1 17-15로 어이없이 패한 데 충격을 받은 대한배구협회는 패인이 신장의
열세와 일본을 지나치게 의식, 경기도 하기 전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라
고 분석했다. 몬트리올 올림픽을 겨냥한 강화훈련에는 장신의 저돌적인 신인들로 대
표팀을 대폭 교체할 뜻을 비쳤다.
이 무렵, 장신의 농구선수를 배구팀에서 스카우트하려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우
리 여자실업팀 선수 가운데 키 180cm를 넘는 선수는 선경합섬의 권인숙(183cm)이
유일했다. 그런데 전주 기전여고 농구선수였던 권인숙은 일신여상에서 스카우트, 배
구를 시작했다. 70년대 초반, 성지공고에서 강만수, 엄한주, 강두태 등을 대표선수로
길러낸 최용진 감독이 선경합섬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권인숙을 본격적인 배구선수
로 훈련시켜 성공한 예로 꼽힌다. 권인숙은 1980년 선경합섬에서 은퇴한 뒤, 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