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80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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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실시한 드래프트에는 12개 팀이 참가해 32명의 선수를 선발했다.
중고연맹과 중앙, 덕성, 남성, 조대여고 등 4개교 교장단의 계속된 드래프트 전면
재검토 요구를 실업연맹에서도 받아들여 1975년 3월, 배구협회는 여고팀과의 자매결
연을 권장하는 실업선수 특별규정을 1976년부터 실시키로 했다.
실업팀들은발빠르게움직였다. 동양나이론이덕성여고와계약을맺었고, 호남정유
는 조대여고와, 석유공사는 광주여고, 중앙여고와, 도로공사는 한양여고와, 전매청은
광주여상과, 선경합섬은마산제일여고와연결됐다. 대농도부산남성과손을잡았다.
하지만 자매 결연제도는 1년 만에 깨지고 말았다. 중고연맹 측에서는 중·고교선수
들의 의욕을 저하시킨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고 실업팀들은 학교팀들의 과다한 육성
지원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1977년 2월말, 이번엔다시추첨에의한팀드래프트를 2회실시한후에개인드래프
트를하는방식을채택했다. 하지만또벽에부딪쳤다. 토프론(동양나이론)은협회의선
수선발특별규정이확정되기전에마산제일여고와자매결연을맺었다며드래프트참가
에완강하게반대했다. 결국 12월실시한팀드래프트에는마산제일여고를제외한 18개
교가참가, 64명의취업을희망하는선수전원이실업팀에입단하는개가를올렸다.
완벽한제도를마련하는것도어렵지만제도를지키고따르려는의지도쉽지않았다.
선수선발규정이야말로실업팀과고교팀의이해가엇갈려자주바뀔수밖에없었다.
1979년 남성여고의 거포 이은경이 대학 진학과 실업단 취업을 놓고 망설이다 드래
프트에 불참했다. 대학 진학을 접으면서 빚어진 사태다. 뒤늦게 남성여고를 지명한
현대에 일반사원으로 입사 후 훈련에 합류하자, 다른 팀들이 반발, 선수등록을 못하
게 되자 배구협회는 대표선수로 활용하기 위해 구제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11월 14일
3년 동안 실시해온 드래프트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이 제도를 전면 폐지키로 했
다. 한일합섬과의 특수 연고관계를 주장하며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았던 한일여실
고에 대해서도 배구협회는 연고관계를 인정해 길경숙, 정옥남, 심현숙 등의 한일합섬
입단을 허용했고 현대가 드래프트 규정과 어긋나게 스카우트했던 이은경도 선수등록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삐거덕 거리며 드래프트방법을 조금씩 개정해 오다 드래프트가 폐지되고 다시 자유
경쟁 체제로 바뀌었지만 자유경쟁 체제도 오래가지 못했다. 배구협회는 1984년 졸업
선수부터 개인 랭킹을 매겨 선발키로 했다가 다시 자유스카우트로 갈 수밖에 없었다.
도돌이표처럼 되풀이가 계속됐다. 1989년엔 다시 자유경쟁스카우트에 매스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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