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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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2년간 끌어오던 선수 선발 방법은 1991년에야 마무
리 됐다. 1992년 여고 졸업 예정 선수부터 2년간 한시적으로 팀 드래프트를 실시키로
했다. 1차 팀 드래프트 후 2차엔 개인 드래프트를 실시키로했다. 11월 드래프트가 실시
되어 1순위로 추첨한 효성이 여고 공격랭킹 1위 주순란 등 4명이 졸업하는 성암여상을
지명했고 2순위의 후지필름은 일신여상을 뽑았다. 하지만 이듬해 여고 졸업반 선수들
의 학부모 20여명이 배구협회로 몰려와 “드래프트 전면폐지”를 외치며 농성한데 이어
안병화배구협회장집까지몰려가시위하는바람에회장이사의를표명했다.
문제가 커지자 학부모의 반발이 수그러들면서 1993년 여고 졸업 예정 선수들에 대
한 드래프트가 진행됐다. 1순위를 뽑은 선경이 경남여고를 지명했고, 2순위인 도로공
사는 한양여고를 지명하는 등 취업 신청 선수 80명중 69명의 실업단 입단이 확정됐
다. 한시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던 드래프트의 잡음이 끝나고 다시 자유경쟁 체제가 도
입되자 선수의 몸값은 부쩍 치솟았다.
실업연맹과중고연맹간의이해가부딪치며 2~3년단위로선수선발방법을바꾸어오
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개인 드래프트로 정착되었다. 프로배구가 발족하기 전부
터드래프트가정착되었기에여자배구는프로화과정을쉽게받아들일수있었다.
라이벌 감독 이창호-전호관
배구코트에서 선수들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감독이 있었다. 여자 실업
배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 미도파와 현대의 사령탑으로 여자대표팀을
1년씩 번갈아 지휘했던 이창호 감독과 전호관 감독이 그들이다.
1968년 국세청 창단 때 코치로 참여한 이창호는 1973년 대농으로 팀이 넘어갈 때도
최이식 감독 체제 아래 코치로 합류해, 국세청-대농-미도파(1979년 팀 이름만 계열
사 이름으로 바꿈)로 이어진 미도파 184연승기록의 현장에 있었던 지도자다.
큰 키(178cm)가 눈에 띄어 인창고에서 배구를 시작, 배구팀이 있는 동양의약대학
(경희대 한의과대학 전신)에 진학, 라이트 공격수로 활약했다. 한의사 자격증을 따고
졸업 후에는 한의원을 개원했지만 인창고와 대학 4년 선배인 박만복 감독의 권유로
배구계에 돌아왔다. 무적함대 미도파가 껄끄러운 상대를 만난 것은 현대 여자배구단
이 창단하고서도 3년이 지난 1981년이다.
현대가 신생팀의 이미지를 벗고 정상 도전의 투지를 드러내면서부터다. 전해엔 우
배구 주요 활동_
실업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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