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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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히도 국제대회가 없어 대표선수들이 모두 소속팀에서 훈련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국내대회가 알차게 진행될 수 있었다. 각 팀의 경기 내용도 좋아지고 전력도 전체적
으로 향상되어 여자배구는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해 대농의 연승행진이
끊어지고 비틀하는 사이, 현대의 추격은 급피치를 냈다. 1981년의 마산에서 열린 종
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대농 콤플렉스를 떨치고 맞수임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현대의 전호관 감독은 부산고교, 성균관대를 거쳐, 1964년 중앙여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인창고와 태광산업 감독을 지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우
리 여자배구가 동메달을 딸 때는 코치로 팀 훈련을 도맡았다.
1982~1988년 여자 실업배구대회 결승은 거의 대부분 미도파-현대의 대결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승부였고 대회의 우승은 주거니 받거니 나눠 가졌다. 두 팀 간의
경기는 공격은 공격대로 파워와 날카로움이 넘쳤고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는 끈질겨
랠리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심판들은 매서운 눈으로 잔뜩 긴장해야했지만 관중들
에겐 보는 재미가 넘치는 배구였다.
게다가 이창호 감독과 전호관 감독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배구를 보였다. 공격선수
출신인 이창호 감독이 수비를 우선시하는 관리배구를, 수비선수였던 전호관 감독은
공격중심의 호쾌한 배구를 했다. H퀵은 몬트리올 올림픽을 대비하며 전 감독이 처음
시도한 공격이었다. 유정혜, 유경화 더블세터를 이용, 상대 블로커들을 혼란케 했는
데 이를 본 일본 기자들이 전 감독의 이름 가운데 이니셜을 붙여 H퀵이라 불렀다.
경기중벤치에서의모습도판이했다.이감독이벤치에서일어났다가한바퀴돌고다시
앉는스타일이라면전감독은큰소리로선수들에게독려하는다혈질의기질을드러냈다.
미디어가 이런 모습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면서 두 팀의 라이벌 관계는 더욱 강화되
었다. 배구가 팬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선수들의 기량, 투혼과 함께 감독의 카리스마
도 중요한 볼거리로 작용함을 보여주는 예였다.
훈련 지상주의 김철용
호남정유의 김철용 감독(62)은 1990년대 한국 여자실업배구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1991년 제8회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3연속 우승을 노리던 강호 현대를 누르고 정
상에 올랐고, 이후 1999년까지 한일합섬, SK케미칼, 현대의 도전에 끄덕도 하지 않
았다. 그야말로 난공불락. 종별선수권대회에서도 1989년~1992년 4연속 왕좌를 지켰
1980년대 신문들은 자주 미도파와 현
대를 최고의 라이벌로 다루었다. 라이
벌 대담으로 이창호(왼쪽) 감독과 전호
관 감독을 다룬 스포츠서울(1986년 3
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