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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유의 9년 정상을 가능케했던
김철용 감독.
다. 1991년 3월 대통령배대회 정상을 차지했을 때, 김 감독은 37살. 여고 최강인 일신
여상 감독에서 실업팀으로 점프한지, 1년 3개월 된 최연소 신예 감독이었다.
배구계에서 김철용 감독은 ‘독한 지도자’로 통한다. 팀워크를 다지고 팀플레이를 위
해서는 ‘실전 이상의 훈련만이 선수들의 실력을 늘게 하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
군산북중 2년때에배구를시작한김감독의선수시절은 8년, 그것도무명선수였다.
고교 입학 당시 키 177㎝로 배구 선수로는 작았고 남산공전으로 진학을 했다가 허리 연
골 부상으로 1년을 쉰 뒤 부산 성지공고에 1학년으로 다시 입학을 하는 곡절도 겪었다.
키가작다는이유로제대로훈련을받은적이없었던그는매일아침새벽 5시30분에일
어나 달리기, 줄넘기를 하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10㎞를 달리며 체력을 다지고 하루에 1
천개이상씩벽에다세터훈련을했고주일에는본격적으로교회에다니기시작했다.
당시 성지공고에는 뒤에 아시아의 거포로 명성을 떨친 강만수가 2학년, 주전 세터
였던 신치용이 같은 1학년이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을 즈음 마지막 부산지역대회
를 열흘 가량 앞두고 손가락 탈골 부상을 당한 세터 신치용을 대신 출전해 그동안 혼
자서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인 것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해서도 3학년부터 주무를 맡아 선수생활은 막을 내렸다. 실업
팀 선수 대신 1980년 8월 성도중학교(현 송림중) 체육교사 겸 배구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그는 불과 1년만인 1981년 1~2학년만으로 가을철배구대
회에서우승을일궈냈다. 그리고 1982년 당시 63연승으로 무패
행진을 하던 여고 최강 일신여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신여상
은 날개를 더 단 모양새가 됐다. ‘김철용 류‘의 카리스마와 지도
력을 발휘하면서 대통령배고교선수권회 6연패도 이루었다.
1987년 실업팀인 호남정유(현 LG정유)로 옮길 때까지 무려
118연승이란 신기록을 세웠다. 그 동안 초고교급 세터로 명성
을 날린 임혜숙, 컴퓨터 세터 이도희를 비롯해 심혜련, 김인숙,
김길순, 고승미, 김성민, 홍석주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멤버
들을 배출했다. 송림과 일신여상에서 6년 동안 감독을 하면서
패배는 중학교 때 7번이 전부다.
고교무대이지만 팀을 무패 연승으로 이끈 그에게 실업팀인
호남정유에서 눈독을 들이자 6 개월 만에 간청을 받아 들여
배구 주요 활동_
실업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