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16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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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기간 문제 ④신인 선수를 배출한 학교에 대한 육성 지원금 문제 ⑤기존 선수들에
대한 신분 보장 방안 ⑥신생팀 창단에 대한 팀 구성 지원 조건 ⑦구단 연고도시 선정
⑧입장권 수입 및 체육관 내 광고료의 분배 ⑨외국인 선수의 도입 등 총 13개 항에 이
른다.
실무협의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의 관계 정립이었다.
당초 대한배구협회는 한국배구연맹을 산하단체로 출범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
만 실업팀 단장들이 구단이 직접 참여해 행정, 재정, 사업을 진행하는 독립법인체를
강력히 요구했고 결국 대한배구협회가 이를 수용했다. 대한배구협회가 한국배구연맹
상급단체로서의 지위를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가운데 프로배구 창립 준비는 순조롭게 이어져 10월 6일 한국배구연맹 창립
구단주 모임을 가진데 이어 마침내 2004년 10월 18일 한국전력 귀빈식당에서 남녀
10개 실업팀 구단주와 단장들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배구연맹 창립총회를 가졌다. 초
대 총재로 김혁규 국회의원(전 경남도지사)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이로써 배구는
단체 구기로는 야구(1982년) 축구(1983년) 농구(1997년)에 이어 4번째 프로 종목으로
탄생했다.
한국배구연맹의 창립으로 존립 자체가 무의미해 진 한국실업배구연맹은 11월 23일
모든 업무를 한국배구연맹으로 이관하고 1963년 출범한 뒤 41년 만에 해산했다. 그리
고 한국배구연맹은 이틀 뒤인 11월 25일 이사회를 열고 영문 약칭인 KVL이 프로농구
연맹인 한국농구연맹의 KBL과 혼동된다면서 영문 명칭을 KOVO(Korean Volleyball
Federation)로 변경했다. 또 경기위원장에 이한구 대한배구협회 비치발리볼 위원장
을, 심판위원장에 김건태 대한배구협회 심판부장을 각각 임명하며 리그 개막을 위한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에 발맞춰 프로 출범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현대캐피탈이 11월 29일 천안시와 유관
순체육관을 연고지로 하는 조인식을 가졌고, 삼성화재는 12월 27일 대전을 연고지로
충무체육관을홈구장으로계약을맺는등실업팀들이빠르게프로체제로바뀌었다.
해가 바뀌어 2005년 1월 19일 KOVO는 제4차 이사회에서 각 구단별 선수 보유한
도를 16명으로 제한하고, 전체 선수의 연봉이 10억5천만 원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
는 샐러리캡을 적용했다. 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용인실내체육관에서 본격적인 개막
에 앞서 시범대회를 개최하고 2월 20일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에서 ‘KT&G 2005 V-
리그’가 개막돼 프로배구는 드디어 고고성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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