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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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었다. 적극적으로 프로화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던 구단에선 오히려 소극적이었
다. 프로화 작업에 정작 주체가 되어야 할 대한배구협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슈퍼리그 출범과 외환위기
이렇게 스쳐가는 바람처럼 잠시 프로화의 꿈에 젖어 있는 동안 농구는 1992년 6월
협회 내에 ‘프로농구소위원회’를 구성하며 꾸준하게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배구가
실업팀 감독들, 그리고 한국실업배구연맹이 주축이 돼 프로화를 논의한 데 비해 농구
는 대한농구협회 차원에서 준비를 한 셈이다.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의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정은 또 달라졌다. 스포츠를
장려한 제5공화국과 달리 문민정부는 ‘스포츠 장려 정책’을 ‘국민 우민화를 위한 군부
시대의 산물’로 규정하고 정책의 뒷전으로 밀어버렸다. 분위기상으로 프로화를 추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급변하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문화체육부이민섭장관이 1993년 7월 23일농구와배구가운데한
종목을최대한빠른시간내에프로화하겠다는 ‘체육진흥5개년계획’을발표, 배구와농구
의 프로화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배구는 1984년 출범해 인기를 끌던 대통령배 전국
남녀배구대회를 1995년 시즌부터 슈퍼리그로 명칭을 바꾸는 정도에 그쳤고 여전히 프로
화에적극성을보이지않는듯했다. ‘대통령배’가 ‘슈퍼리그’로바뀐연유에대해서는정확
하게알려지지않았지만 ‘슈퍼리그’라는명칭이 1983년축구가프로화를시작하면서붙였
던이름이란점에서프로화를염두에둔대회명칭변경으로해석해도무방할듯하다.
1995년슈퍼리그 개막식 모습
대통령배 전국남녀배구대회가 1995년
‘백구의 대제전’ 한국배구 슈퍼리그로
이름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