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04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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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선수들의 참가가 전면적으로 시작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부터였다.
반면 축구는 1983년 현재 K-리그의 전신인 슈퍼리그가 출범하면서 ‘슈퍼리그위원
회’를 만들었으나 곧 해산하고 1984년 대한축구협회(KFA) 산하 프로위원회가 슈퍼
리그를 관장했다. 그 뒤 프로리그 활성화를 위해서는 별도 독립기구가 필요하다는 여
론에 따라 1987년 프로축구위원회를 창립됐으나 이마저도 1989년 대한축구협회에
흡수 통합되고 말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창설된 것은 1994년이었고 2008년 12월
16일에는 사단법인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 인가를 받았다.
즉 프로축구는 창설 당시부터 대한축구협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지금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대한축구협회의 산하단체로 지휘, 감독을 받고 있다. 이처럼 야
구와 축구가 같은 길을 가면서도 서로 다른 방법으로 프로화를 하게 된 것은 올림픽
종목의 유무와 국제연맹의 역할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야구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되기 전까지 아
시안게임이나 올림픽(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첫 정식종목 채택)과는 무관한 종목이
었다. 국제야구연맹(현 국제야구소프트볼연맹, WBSC)은 아마추어 야구만을 관장하
고 프로야구는 별도의 국제기구 없이 미국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주도했다. 프
로야구를 하는 국가도 미국과 일본 정도뿐이었다. 따라서 야구는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종목이 아니었던 탓에 프로라고 불러도 굳이 문제되지 않았다.
축구는 이미 유럽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프
로와 아마추어를 모두 관장했다. 따라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모든 국제 축구 경기
는 FIFA-KFA로 이어지는 일관된 조직에서 모든 업무 처리가 이루어졌다. 프로선수
들의 올림픽 참가가 엄격히 규제되고 있었지만 한 조직에서 업무를 처리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야구의 이원화된 조직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프로선수들의 참가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면서 갖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제종합대회 출전을 예로 들면
축구는 프로선수들을 대표선수로 선발하는 데 큰 제약이 없다. 바로 프로축구연맹이
대한축구협회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는 산하(傘下) 단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는 다르다. 프로선수 가운데 국가대표 선수 선발은 한국야구위원회가
주도한다. 이들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출전시키기 위한 모든 행정조치는 대한야
구협회가 해야 한다. 한국야구위원회가 대한체육회 가맹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야
구의 이원화된 업무는 지금껏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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