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02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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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들은 모두 개인종목들이었다. 미국의 메이저리그나 유럽의 프로축구처
럼 단체종목의 프로화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광복이 되고 첫 출전한 1948년
런던 올림픽 이후 28년이 지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첫
금메달을 딸 정도였으니 정치·사회·경제·문화 어느 면에서도 1970년대는 프로 단
체 종목의 탄생은 상상조차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한 1981년 9월30일 ‘바덴바덴의 기적’이라 부르는 1988년 제24
회 올림픽 유치 성공, 그리고 2달 뒤인 11월 26일 1986년 제10회 아시안게임 유치는
사회 전반에 큰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서울 올림픽 유치는 절대열세였던 일본 나
고야를 따돌렸다는데서, 서울 아시안게임 유치는 함께 유치 신청을 한 평양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뿌듯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 주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두 국제대회 유치로 우리나라는 단숨에 ‘세계 스포츠
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불과했다.
1981년 3월 탄생한 제5공화국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스포츠가 갖는 위력, 즉 국민
들의 마음을 한군데로 모으는 힘이 그 어떤 분야보다 스포츠가 앞선다는 점을 꿰뚫어
보았다. 제5공화국이 출범한 지 불과 2개월도 되지 않은 이해 5월 대중적인 스포츠로
인기가 많은 축구와 야구의 프로화를 은밀하게 추진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야구의 프로화는 불과 6개월 여 만인 1981년 12월 11일 창립총회, 이듬해인 1982년
3월 27일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개막경기로 출범의 닻을 올렸다.
야구가 처음부터 6개 구단으로 틀을 잡고 출범했지만 축구는 제대로 프로축구라는
이름으로 출범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프로축구팀의 원조는 1980년 12월
에 창단된 할렐루야였다. 그 뒤 1982년 12월 17일 유공이 프로축구팀을 창단했다. 이
에 발맞춰 대우, 포항제철이 프로팀 창단을 서두르자 1983년 3월에야 대한축구협회
는 슈퍼리그위원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프로축구 출범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이해 5월
‘슈퍼리그’란 이름으로 첫 대회를 가지게 됐다.
축구가 프로라는 이름 대신 ‘슈퍼리그’로 시작하게 된 동기는 그 때만 하더라도
1988년 서울올림픽에 프로선수들의 출전이 허용될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아 아마추어
축구도 함께 육성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 때문이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유치로 일기 시작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프로야구, 프로축
구의 출범과 절묘하게 맞물려 조기에 정착하는 데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1980년 12월 1일부터 시작된 TV의 전면 컬러 방송을 통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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