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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새로운 도전
나라의 대표급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교훈을 안겨 주었다. 그만큼 한국과 중
동이나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전력 격차가 거의 없어졌다는 뜻이다.
남자는 무엇보다 이란과의 전력 격차가 두드러져 보인다. 1994년부터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올림픽 예선전 등에서의 국가대표 팀간 성적을 보면 한국이 13승9패
로 앞서 있지만 이것은 2008년까지 12승1패로 압도적 우위를 보인 덕분이었다. 그 뒤
제18회 아시아선수권대회(2015년 7월31~8. 8, 이란 테헤란) 준결승 리그에서 3-1로
이겼을 뿐 8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이란은 월드리그에서도 2013년 1부 그룹으로 승
격해 브라질,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강국으로 탈바
꿈해 한국과의 격차를 더 벌이고 있다. 2003년 박기원이 이란 대표 감독을 지내는 등
많은 배구 지도자들이 1970부터 2000년 초반까지 아랍권 국가들을 지도한 것과 비교
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1987년 세계청소년남자선수권대회와 1991년 세계유스여자선수권대회 우승 등 한
때 세계 중심에 섰던 한국이 아시아권에서 조차 신흥국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된
데는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KOVO)의 이원화된 조직에서 오는 체계적인 선
수관리 부재와 세계 배구 흐름에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국제대회를 거의 유치하지 않고 있는 것도 뒷걸음질을 치는 전력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무대에서 남녀 모두 하위권으로 전락한 일본은 월
드컵과 그랜드챔피언스컵을 붙박이로 열고, 올림픽 최종 예선전 등 주요 대회는 거의
유치하고 있다. 여기에 태국, 베트남, 인도, 심지어 홍콩, 마카오까지 각종 아시아 대
회들을 개최해 전력 향상을 꾀하고 있으나 한국은 아예 국제대회 소외지대로 물러난
느낌마저 주고 있다.
한국 스포츠 프로화 발자취
우리나라 스포츠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프로 시대를 맞는다. 물론 한
때 동양타이틀매치, 세계타이틀매치를 간간이 벌인 프로복싱이 반짝 인기를 끌기도
하고 민속씨름이 준프로 형태로, 그리고 골프가 아마추어와 구별해서 프로로 인식되
었지만 지속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2.
프로 배구
시대의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