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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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새로운 도전
모르게 아마-프로의 알력이 나타났다.
1997년에 출범한 프로농구, 그리고 이보다 8년 뒤인 2005년에야 겨우 첫발을 뗀
프로배구는 모두 야구의 경우를 따랐다. 프로농구와 배구에 참여한 구단들이 새로운
별도 단체 조직 구성을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프로배구 출범 13시즌 째에 접어들었지만 협회와 연맹의 이원화된 조직은 국제 경
쟁력 약화와 아마추어 협회의 재정 악화를 초래했다. 국가대표 선발에 불협화음도 뒤
따랐다. 협회와 연맹이 조직 정비나 협력 체계를 위한 특단의 조처를 강구하지 않는
다면 이런 문제들은 언제까지든 현재진행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프로배구 모태가 된 대통령배 대회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출범은 대표적인 실내 종목인 배구의 프로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고 당장 배구가 프로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아니다. 여
자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따내고 남자도
1978년 이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를 차지해 세계 상위권 실력을 갖췄지만 야
구나 축구처럼 당장 프로화를 추진하기에는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프로선수들의 출전이 불가능한 것도 연유였지만 남녀 모
두 저변이 너무 약했다. 서울시청,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한국담배인삼공사 등 프
로화하기에는 어려운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들의 팀 육성도 걸림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배구협회가 장차 다가올 프로 시대를 염두에 둔 것만은 확
실해 보인다. 협회는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2년 뒤, 그리고 프로축구가 시작된 지 불
과 7개월 뒤인 1984년 ‘백구의 대제전’ 대통령배전국남녀배구대회를 창설했다.
대통령배라고 이름이 붙은 대회가 물론 처음은 아니다. 1974년부터 종합선수권대
회가 대통령배로 치러졌다. 거창하게 종합선수권대회라고 했지만 참가팀은 들쑥날쑥
해 일반부에서 달랑 한 개 팀만 참가할 정도로 초라한 때도 있었다.
1984년에 시작된 ‘백구의 대제전’ 대통령배 전국남녀배구대회는 종합선수권과 완전
히 격이 달랐다. 대회 기간이 1월 14일부터 3월 25일까지 70여일에 걸친 대장정이었
다. 서울을 비롯해 청주 전주 광주 부산 대구 마산 대전 등 전국 순회하며 경기를 벌
였다. 주말에 경기가 열렸고 이들 경기들 대부분을 KBS가 실시간 중계했다.
흥행은 대성공이었다. 지금의 프로배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각 구단들의 연고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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