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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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새로운 도전
농구가 1996년 10월16일 한국농구연맹 창립총회를 갖고 1997년 2월 ‘FILA배 97프
로농구대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자 비로소 이에 자극을 받은 배구의 움직임도 빨라
지기 시작했다.
1997년 6월 11일 삼성화재, 고려증권, 대한항공, LG화재, 현대자동차써비스 등 남
자 5개 실업팀 단장들이 조선호텔에서 모여 ‘프로추진위원회’(가칭) 구성에 합의하고
11월 17일에 마침내 프로배구추진위원회(위원장 오관영)를 결성했다. 5개 실업팀에서
각각 5천만 원씩 갹출해 운영비도 마련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돌발 악재가 터졌다.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지 불과 보름 만인
12월 3일 우리 국민들을 시름에 빠뜨린 외환위기가 몰아친 것. 외환 보유액이 급감
하고 기업이 연쇄 도산한 소위 IMF 구제금융과 혹독한 구조조정을 불러 온 외환사
태였다.
배구단에도 예외 없이 찬바람이 몰아쳤다. 남자 실업팀 간판 고려증권배구단이 12
월 7일 모기업 부도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간신히 협회의 보조를 받아 1997~1998시
즌에 나서 ‘IMF 군단’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어디에도 배구단을 인수하겠다
고 나서는 기업이 없었다. 1983년 1월에 창단해 대통령배 창설대회 우승을 비롯해 대
통령배대회와 슈퍼리그에서 무려 6회 우승하는 등 남자 실업팀 최고 팀으로 우뚝 섰
던 고려증권은 결국 1998년 2월18일 LG화재와의 경기를 고별전으로 공식경기를 마
치고 창단 15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자 실업배구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10개팀 가운데 미도파를 인수한 효성, 한일
해체된고려증권 선수들 모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해체된 고
려증권 배구 선수들은 지금도 정기적
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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