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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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우리의 스타트는 매우 저조했다. 우리가 수세에 몰리면서 소련의 공세가 강화되었다. 아울러 우
리의 속공 연결이 여의치 않아 그들의 높은 블로킹 벽을 뚫기 어려웠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제1, 제4세트를 시소 끝에 16-14로 뺏긴 것이 너무 뼈아팠다. 제3세트 15-2란 스코
어도 어처구니없었다. 4세트를 놓치지 않았다면 승산이 충분한 경기였다. 그러나 4세트에서 14-8까지
리드하고 있을 때 조혜정이 다리 경련으로 물러나면서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 역전당하고 말았다.
2년 전 멕시코 세계선수권대회 때만해도 동독은 분수식의 단조로운 오픈공격에 주력했으나 2년 만에
컴퓨터 식 속공스타일로 바뀌었다.
우리의 두 번째 상대인 동독과의 대전은 혼란이 더 심했다. 어이없이 먼저 두 세트를 내어주고 배수진
을 친 비장한 각오로 반격에 나서자 이번에는 동독이 흔들렸다. 이야말로 기사회생이었다. 마지막 세
트를 10-13으로 리드 당하고 있을 때 우리선수들은 불안에 빠져 있었지만 게임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세트 15-13 한국의 승리. 그러나 지옥 같은 악몽을 탈출한 가운데 운이 따르기도 했으므로 내
용으로는 우리가 진 게임이었다.
다음엔 쿠바를 꼭 잡아야 4강전의 희망이 보이는 절박한 상황. 이 게임 역시 풀세트 접전이었고 행운
도 우리 편이었다. 쿠바는 선천적인 검은 피부와 1m가 넘는 서전트 점프력이 말해주듯 ‘검은 고무공’
이라는 별명이 붙은 팀이다. 따라서 그들의 타점 높은 공격 파괴력은 그야말로 공포적이다.
우리의 스타트는 좋은 편이어서 14-11로 리드. 그러나 우리의 범실이 거듭되면서 14-16으로 역전 당했
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2, 3세트를 4점, 3점으로 막아낸 우리 선수들의 파이팅
이 놀라웠다. 여기서 다시 쿠바강공이 거듭되는 가운데 우리가 수세에 몰려 3차례의 타이 끝에 13-15
로 물러나 세트스코어 2-2가 되었다. 무엇보다 체력의 한계, 부상 후유증 그리고 정신적 압박감으로
예측할 수 없는 혼전 상황이었다.
제5세트에 앞서 5분 휴식 후 원기를 회복한 우리 선수들은 그야말로 필사의 반격으로 맞서 15-10, 마
침내 준결승 진출의 1차 목표를 이루었다. 준결승에서 만난 일본은 우리에겐 벅찬 상대였기에 승산
이 없을 경우 여기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헝가리와의 3, 4위전을 겨냥한 제2전략이 필요했다. 일본과
의 첫 세트는 13-13 타이를 이루는 접전. 여기서 우리가 가장 경계했던 우리 동포 출신의 일본 에이스
시라이의 공격이 터지면서 우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다음 3, 4위전을 대비하기
위해 이순복, 조혜정을 쉬게 하고 제2, 3세트를 6점, 5점에서 내주어야 했다.
우리의 메달 경쟁자인 헝가리는 동구권 강자답게 강한 압박 작전을 폈다. 우리는 심판의 불리가 없도
록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세트를 허무하게 내준 뒤 제2세트에서도 2-9로 밀리고 있을 때 우
리 선수들의 고함소리가 울리며 반격이 시작되었다. 우리 주무기인 속공이 되살아나자 주도권을 잡은
우리 팀은 15-10, 15-6으로 제3, 4세트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대망의 동메달 숙원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