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38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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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거리인 오픈 강타도 빗나가기 일쑤였다.
서로 한 세트씩 주고받아 세트 스코어 1-1. 이때부터 우리 선수들의 장기인 서브의
위력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면서 북한 수비를 흔들었다. 여기에 진준택, 이용관의 블로
킹이 잇달아 성공하며 3세트를 15-6으로 낙승.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4세트 들어 북한이 필사적으로 따라 붙어 12-10, 턱밑까지 추격하자 우리는 박기
원을 축으로 한 장신벽으로 잇달아 블로킹을 성공시키고 김충한과 노련한 콤비플레
이가 빛을 발해 15-10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뉴델리 첫 남북 대결 때와 마찬가지
로 북한은 오픈 공격의 파워가 강하지만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면 쉽게 무너지는 허점
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자신감 얻은 뮌헨 올림픽
북한을 이긴 우리 대표팀이 귀국을 했더라면 열렬한 환영이라도 받았겠지만 올림
픽이 코앞에 닥치는 바람에 프랑스 상디에 결전을 마무리하고 바로 뮌헨으로 향해야
했다.
뮌헨 올림픽에서 우리 남자팀은 소련, 불가리아, 체코, 폴란드, 튀니지와 함께 A조,
일본, 동독, 서독, 루마니아, 브라질, 쿠바는 B조였다. 우리 대표팀은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소련을 잡기는 어렵더라도 불가리아(1970년 세계선수권 2위), 체코(1964 도
쿄 올림픽 2위), 폴란드(세계 예선 1위)를 뛰어 넘어보자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의 과욕이었다. 먼저 불가리아에 18-16으로 첫 세트를 따낸 뒤
내리 3세트를 내주어 물러섰고 폴란드를 3-1로 잡았지만 체코에는 3-0으로 완패하
고 튀니지를 3-0을 이겨 결국 2승3패로 조 3위에 그쳐 하위권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5~8위전에 나선 우리나라는 B조 3위인 루마니아에 3-0으로 힘없이 물러난 뒤
7-8위전에서 브라질을 3-0으로 잡아 7위를 기록했다.
우리 선수단의 당초 목표는 6위였다. 따라서 목표 미달이었지만 도쿄 올림픽 10위
에서 3단계 올라간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박진관 감독은 “우리 남자배구가 국제무대에 나선 지 불과 10여년 만에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을 대견하게 생각하며 우리는 1973년 체코 월드컵이나 1974년 멕시코
세계선수권 그리고 2년 후의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더 좋은 성과를 올리도록 희망과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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