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36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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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시작하여 상대를 교란시키는 전술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선수들의 에너지 소
모를 최소한으로 줄이되 피로도의 차이를 가능한 한 균등하게 하며 특정선수 의존도
를 낮추어 조직에 의한 힘의 분산을 꾀하는 방법이다.
또 선수 6명의 에너지가 비슷하고 테크닉에서도 밸런스가 이루어져 속공을 구사한
다 해도 서구 팀의 스피드와 장신 벽을 뛰어 넘어야 하므로 결국 장신화라는 절대 과
제는 반드시 풀고 가야 한다.“
박무 코치의 자성론과 달리 멕시코 올림픽을 보는 언론의 시각은 일단 희망을 확인
했다는 긍정론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 대회 결과를 분석한 어느 미디어의 평가를 보면-
‘4년 전 도쿄에서의 실패와는 달리 한국 여자 배구의 놀라운 진전은 훌륭한 성공작
으로 평가될 만하다. 특히 한국 여자 배구선수들이 멕시코시티에서 현지 시민들의 가
장 뜨거운 응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만하다.’
우리 여자 배구가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얻은 자신감을 발판으로 뮌헨 올림픽 4
위, 다시 몬트리올 올림픽 3위로 한 단계씩 올라섰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중간에 여자 월드컵의 도약 발판(3위)도 의미 있는 성과였다.
또 다시 맞붙은 남북대결
우리 배구가 맞은 세 번째 올림픽, 1972년 뮌헨 제20회 올림픽. 8년 전 도쿄 올림
픽을 북한이 보이콧하며 불참해 우리 여자팀이 참가했지만 뮌헨에서는 아시아예선을
통과한 우리 남자 팀과 지난 올림픽 성적에 따라 자격을 얻은 여자 팀이 나란히 참가
하는 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남,북한과 자유중국 3개팀이 겨룬 상디에(프랑스) 남자예선에서 한국이
전력상 부담스러운 상대였던 북한을 3-1(15-11, 13-15, 15-6, 15-10)로 물리쳐 8년
전 뉴델리에서의 첫 만남 이후 2연승의 승전보를 올렸다.
비록 남녀 팀 모두 뮌헨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으나 남자는 1964년 도쿄
올림픽 10위에서 7위로, 여자는 6위에서 4위로 상승했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를 받을
만 했다. 남자는 당초 북한을 누르고 지역 예선을 통과하는 것이 목표였던 만큼 두 차
례 북한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한 결과는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팀은
뉴델리에 이어 뮌헨에서 또 다시 북한에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한 채 완패해 여전한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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