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34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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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해 사상 최대 규모인 224명을 파견했다.
그러나 일본의 야망은 가네포(신생국경기대회)에 출전한 북한 육상선수 신금단에
대한 국제육상연맹의 자격박탈로 촉발된 일련의 정치바람으로 끝내 북한이 선수단을
철수시키고 올림픽 자체를 보이콧 하고 말았다. 북한의 불참은 곧바로 여자 배구로
불똥이 튀었다. 북한이 올림픽에서 철수함에 따라 여자 배구는 참가팀이 5개국밖에
되지 않아 유산위기에 봉착하기에 이르렀다. 올림픽의 모든 종목이 6개 팀 이상이 되
어야 공식대회로 인정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방침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조직위원회는 부랴부랴 한국에 대리출전 요청과 함께 바로 일본항
공 전세기까지 보내는 급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우리 여자팀은 뉴델리에서 북한
에 아시아대표권을 뺏긴 뒤 해체 상태로 9개월이나 지났기 때문에 바로 출전할 준비
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더러 대리참가에 대한 국내여론이 좋을 리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여자배구 유산을 막기 위한 들러리 성격의 출전을 비난 또는 반대하
는 분위기 속에 한국 측이 금전로비를 받았다는 보도까지 흘러나와 대한체육회와 대
한배구협회를 당황하게 했다.
잡음이 이어지자 오광섭 당시 대한체육회 전무이사(현 사무총장)는 “일본의 로비는
없었으며 항공료를 포함한 우리 선수단의 원정비용은 국고 지원에 따라 지원할 것”이
라고 로비설을 일축함으로써 잡음을 해소했다. 해체됐던 대표팀이 급조되고 부랴부
랴 밤을 새워 선수단복을 만드는 우려곡절을 겪은 끝에 우리 여자 대표팀은 남자팀과
나란히 도쿄 올림픽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게 됐다.
그러나처음올림픽에등장한배구는유럽과아시아의격차가너무큰데다급조된우리
여자팀으로서는1승도기대할수없는상황에서경험축적에만족해야했다.이런수준차로
남자농구가본선무대에서9전전패한것처럼남녀배구모두1승을올리지못한채물러나는
참담한패배를맛보아야만했다.남자팀은9전전패로10위,여자팀은5전전패로6위였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출전 한국선수단
◇남자 선수단
▲임원=감독 이상룡, 코치 박진관
▲선수=?이규소, 서반석, 정선흥, 김인수, 김광수, 박서광, 김진희, 김영준, 오평길, 김성길, 손영완,
임태호
◇여자 선수단
▲임원=감독 장경환, 코치 오재월
▲선수=?서춘강, 김길자, 유춘자, 오순옥, 문경숙, 홍남선, 최돈희, 정정은, 오청자, 윤정숙, 광용자, 이근수
1...,224,225,226,227,228,229,230,231,232,233 235,236,237,238,239,240,241,242,243,24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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