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62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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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선수단
▲임원=감독 이선구, 코치 어창선
▲선수=?백목화, 이효희, 김해란, 남지연, 김연경, 박정아, 한송이, 배유나, 양효진, 김희진, 이재영,
이다영
U대회 22회 출전, 4개 금메달
1960년대 우리나라 배구의 세계 도전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과정에 유니버시아드가 자리 잡고 있다. 비록 그 수준은 미약해 올림픽과는 견줄 수
없지만 1970년대 들어서는 유럽세 특히 공산 블록과의 경쟁이라는 의미가 있었기에
미디어의 포커스가 모아지곤 했다.
따라서 세계 대학스포츠가 한 자리에 모이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이하 U대회)는 우
리나라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배구는 1967년 도쿄 U대회에서 동구
권 강호들이 불참한 가운데 처음 은메달을 획득한 뒤를 이어 1979년 멕시코시티 U대
회에서 대망의 금메달 꿈을 이루는 등 유니버시아드 단골손님에서 효자종목으로 자
리 잡았다.
대학스포츠의 순수 이상과도 연결되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 배구가 공산블록의 벽
을 넘어 동구권 강호들과 교류하면서 기술과 수준 향상과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구는 대학스포츠 세계화의 1등공신이라 할 만하다. U대회가 국내에서는 올
림픽 다음가는 국제이벤트로 평가되는 이유다.
육상경기 세계대회(1959년 토리노)로 시작한 유니버시아드 운동은 1967년 도쿄
유니버시아드에서 공산블록의 보이콧 파동으로 상처를 입으면서 흔들렸으나 다음
토리노 U대회부터 자리를 잡았다. 이 U대회서 우리 남자 배구는 처음으로 3위에 오
르는 성과를 올렸다. 그 뒤를 이어 열린 1973년 모스크바 U대회에서는 외교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선수단이 참가, 한국 남자배구가 세 차례 연속 동메달을 기록
했다.
특히 개막식에 이어 태극기를 든 한국 선수들이 붉은 광장으로 행진하는 인상적인
장면은 뉴스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로 공산권 철(鐵)의 장벽을 뛰
어 넘는 것으로 유니버시아드 운동에서의 한국의 역할이 커지고 스포츠 교류의 문호
가 열리는 신호였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당시 KOC는 먼저 회원국이 된 북한(DPRK)과의 마찰을 피해 한국대학스포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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