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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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KUSB) 이름으로 가입했을 뿐더러 소련과의 교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장
기영(張基榮) IOC위원은 유럽지역에 영향력이 큰 국제체육기자연맹(AIPS)에 우리 언
론사들이 가입하도록 주선하여 모스크바 U대회 참가에 이들 여론의 힘을 빌리는 등
주도면밀한 외교 전략을 마련했었다.
따라서 분단 상황에 있는 한국 스포츠외교로서는 그만큼 어려운 장애가 있었
으며 유니버시아드 운동에 그만큼 비중 큰 외교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당시
국내 대학스포츠의 인구나 경기력 등 여건이 열악하여 경쟁력에서 뒤지는 형국
이었으나 유U대회를 통해 모범국의 터전을 마련함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운동의효자종목은단연배구였으며단골손님으로위상을확고하게했다. 우리남
자배구는 1979년 멕시코시티 U대회에서는 마침내 쿠바, 일본, 소련을 따돌리고 대망의
왕좌에 오르는 행운을 맞았다. 한국이 쿠바에 3-2로 아깝게 물러섰으나 세트득실차에
서 앞서 쿠바, 일본을 따돌리고 정상에 오른 것이다. 이어 1983년 부쿠레슈티, 그 다음
에드먼턴과고베를도는가운데 4강을유지할만큼안정된위상을보여주었다.
1995년 후쿠오카 U대회 때는 스페인을 맞아 마지막 세트에서 랠리 포인트를 주고
받는 시소를 벌인 끝에 3-2로 역전승, 두 번째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고 1997년 시칠
리아 U대회 때는 홈팀의 이탈리아를 3-0으로 누르고 3번째 금메달을 2회 연속 우승
으로 따내 남자 배구의 우수성을 과시했다.
대구에서 열린 2003년 U대회서 우리 남자배구가 일본, 미국을 제치고 우승, 홈팀
1973 모스크바 유니버시아드 개회
식장에서
배구 주요 활동_
국제무대도전
1...,253,254,255,256,257,258,259,260,261,262 264,265,266,267,268,269,270,271,272,27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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