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72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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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랐을 뿐이고 1986년 프랑스(파리), 1998년 일본(도쿄), 2010년 이탈리아(로마) 대
회에는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다. 나머지 대회에서는 모두 중하위권으로 쳐졌다.
- 1967년 첫 출전해 3위 등 네 차례 4강에 올라
남자가 제8회 대회에 첫 출전했지만 여자는 이보다 8년이 빠른 제5회 대회부터 세
계선수권 무대를 밟았다.
제5회 대회는 1966년 페루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대회 개막이 다가오는
데도 불구하고 체육관이 완성되지 않았다. 부득이 페루 측에서 대회 연기를 요청했으
나 국제배구연맹이 이를 거부하면서 대회 장소를 일본으로 옮겼고 해를 넘긴 1967년
1월, 도쿄의 무도관에서 열리게 됐다.
제5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는 소련, 체코 등 11개국이 참가해 5위까지 1968년 멕시
코 올림픽 출전권을 주는 예선전까지 겸하기로 했으나 막상 대회를 앞두고 북한과 동
독의 ‘호칭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산권 7개국이 불참을 선언,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
페루 등 달랑 4개국만 참가하게 됐다. 따라서 참가 4개국은 당초 규정에 따라 모두
성적에 관계없이 멕시코 올림픽 출전권을 땄다.
이와 함께 정부는 우리 선수단 파견비로 170만원을 일반회계 예비비에서 지출, 대
회의 중요성을 실감케 해 주었다.
대회 개막을 앞두고 당시 언론에 게재된 기사를 보면 우리 대표팀 장경환 감독은
문경숙을 센터로, 주공 서희숙, 주문자, 보조공격수 이근수, 허주옥을 앞세워 다채로
운 공격으로 미국전을 승리해 2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우리 대표팀은 그러나 1차전서 우리보다 평균 신장이 8.6㎝나 더 큰 미국을 맞아
높이에서 밀리며 1, 2세트를 15-10, 15-7로 내주고 말았다. 수세에만 급급하던 우리
는 3세트에서 서희숙, 주문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변화 공격이 주효해 15-7로 이겼으
나 4세트에서 15-9로 져 결국 3-1로 패하고 말았다.
2차전서 맞붙은 일본은 196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세계 최강. 이에 맞서 우리
대표팀은 서희숙이 분전하면서 오히려 미국전보다 더 활발한 공격과 수비를 펼쳤으
나 체력과 기술에서 모두 뒤져 3세트 합쳐 단 10점만 뽑는 데 그치며 일본에 3-0으
로 패하고 말았다.
나란히 2패씩을 안고 3위 자리를 놓고 겨룬 페루와의 마지막 게임에서 우리 대표팀
은 첫 세트 초반, 서브 리시버 미스가 자주 나오면서 고전했으나 서희숙, 주문자, 허
1...,262,263,264,265,266,267,268,269,270,271 273,274,275,276,277,278,279,280,281,28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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