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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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 올림픽에 처음으로 배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모두 14차례 대회에서 배구경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여자 11
번, 남자 8번의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만들었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개최국의 자동 출전권을 제외하면 대륙 대표권을 결
정하는 지역 예선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여자 대표팀은
지역에서 꾸준한 경쟁력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 러시아 등 구 동구권 강호는 물론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장신 자원이 풍부한 중남미 신흥세력의 성장, 그리고 세계 최
다 인구, 최강 맨파워를 자랑하는 중국과의 힘겨루기에서 버텨내며 8강권을 줄곧 지
켜온 것은 놀라운 성취로 평가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여자 대표팀은 올림픽에 출전하면 8위 이내에 들었고 세 번의 4강이
라는 성적을 올렸다.
우리팀의 저력은 좀처럼 포기할 줄 모르는 승부 근성과 정신력이다. 그 위에 월드
클래스 슈퍼스타 김연경이 가세한 것이다. 김연경은 우리나라 배구 역사상 최고의 선
수이자 국내 여성 스포츠 최고 스타로 평가받았다.
우리 여자 선수들의 놀라운 투혼과는 상대적으로 남자팀이 후퇴, 안타까움을 더해
주었다.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으로 끝나지 않고 2016년 리우
까지 4회 올림픽 진출 실패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세계화 전초기지 아시안게임
‘영원한 전진’을 표방한 아시안게임은 세계를 향한 우리나라 스포츠의 전초기지였
다. 60년대까지 아시아 맹주(盟主)인 일본과의 힘겨운 싸움이 있었다면 70년대 들어
서는 거인(巨人) 중공(당시 호칭)이 등장하면서 혼전 상황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 배구는 1958년 제3회 도쿄 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아 무대에 첫 선을 보였
다. 지금처럼 6인제가 아닌 9인제였다. 여기서 우리 남자팀은 일본에 이어 2위(4승1
패)를 차지했으나 4년 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는 새로운 6인제에 제대로 적응하
지 못해 메달권 밖으로 밀려 나기도 했다.
1966년 제4회 방콕대회는 한국에게는, 영광과 수치의 명암(明暗)이 교차되는 무대
아시안게임과
유니버시아드
배구 주요 활동_
국제무대도전
1...,247,248,249,250,251,252,253,254,255,256 258,259,260,261,262,263,264,265,266,26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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