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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요청 [女子배구-한국대표팀의 ^+역대 성적은? 및 ^북한-1972년 까지 세계 3위 2번 ^+박만복 감독과 페루 은메달-70년대 초-여자배구-村外 훈련-^파트너-고교배구 막강-^+대신고교팀 및+오자미 사건은?]
 작성자 | 한준구 작성일  | 2018/10/06 6:3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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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배구,

한국 스포츠에 특별한 종목 ..

다시 잘 준비해서 도쿄 꼭 가자



입력 2018.10.05. 12:17


                          
       
▲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 FIVB 제공


[스포티비뉴스=

신명철 기자에게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는 늘 있었고,

한국인은 특유의 끈기로 위기를 극복했다.

여자 배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은 4일

고베에서 열린

2018년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

C조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이겼다.

마지막 경기에서 완승한 한국은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앞선 4경기에서 모두 졌다.


반드시 잡아야 할

태국과 아제르바이잔에 진 점은

매우 뼈아프다.

(그건 막연한 우리만의 생각이었을 뿐-옮긴이 주


2020년 도쿄 올림픽 예선에서

유리한 조에 들기 위해서는

좀 더 분발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올림픽에 갈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한국

1974년 이후 세계선수권대회 본선 1라운드에서

처음 탈락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4년 대회(이탈리아)에는 나서지 못했고

2010년 대회(일본)에서는

태국과 공동 13위를 기록했다.


2006년 대회(일본)에서는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13위에 올랐다.


2002 대회(독일)에서는

5위결정전에서

쿠바에 세트코어 2-3으로 졌다.

최광희 장소연 한유미 김사니 구기란

등이 활약한 대회다.


1998년 대회(일본)에서는

페루와 공동 9위에 올랐고


1994년 대회(브라질)에서는

3위 결정전에서

러시아에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했다.

이도희 장윤희 김남순 홍지연 장소연

등이 4강 멤버다.

 

1990년 대회(중국)에서는

5위 결정전에서 페루를 세트스코어 3-1로 꺾었다.

박미희 지경희 장윤희 남순옥 등이

주전으로 뛴 대회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는 등

그 무렵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페루

한국인 박만복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한국 서울 올림픽에서

홈코트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출전 8개국 가운데 꼴찌를 했다.

 

한국은

1986년 세계선수권대회(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8위를 했는데

이 대회에서 북한은 출전 16개국 가운데 14위를 기록했다.


북한

한국보다 먼저

1956년 제2회 대회(프랑스) 때

세계선수권대회에 데뷔한 북한

그 대회에서 7위,

1962년 대회(소련)에서 10위에 오른데 이어

1970년 대회(불가리아)에서는

소련과 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북한은 2년 뒤인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한국을 세트스코어 3-0(15-7 15-9 15-9)

으로 누르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에서

연속으로 3위를 기록한 북한의 주 공격수는

김증복인데 성별 논란이 일어나면서

29살 때인 1974년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한국은 김증복이 빠진 북한을

세트스코어 3-0(15-6 15-5 15-9)으로 설욕하고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은 동메달을 획득했다.

[Road to Rio] 여자 배구 특집⑥ - 올림픽 선배들이 보는 리우데자네이루 전망  

올림픽 동메달 멤버는

‘더블 세터’인 유경화 유정혜를 비롯해

주 공격수인 ‘나는 작은 새’ 조혜정

그리고

이순복 정순옥 마금자

장혜숙 이순옥 박미금

변경자 백명선 윤영내 등 12명이다.

몬트리올 사진
몬트리올 여자 배구팀 김한수감독, 윤영내, 전호관 코치, 박미금, 이순옥.(사진 왼쪽 부터)


 

한국은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 사상 첫 메달을,

북한은 2018년 현재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 사상

유일한 메달을 배구에서 땄다.

 

이에 앞서 한국은

1967년 세계선수권대회(일본)에서 3위를 했는데

이 대회에는 동서 냉전의 영향으로

소련 등 동유럽 나라들이 불찬한 가운데

일본 미국 한국 페루가 참가해 1~4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1967년 이전에 열린

4차례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한국 여자 배구

1964년 도쿄 대회 때

북한이 보이콧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출전해 출전

 6개국 가운데 꼴찌를 한데 이어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에서는 5위,

1972년 뮌헨 대회에서는 4위를 한데 이어

4번째 도전에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뤘다.

그리고

2012년 런던 대회에서

40년 만에 올림픽 4강에 올랐으나

일본에 세트스코어 0-3으로 져

두 번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한국은 올림픽 세계 예선서 일본을 3-1로 물리쳤기에

본선 패배가 매우 아쉬웠다.

(당시 배구협회측이 좀더 신중하게 대표팀을

잘 지원해 주었더라면?-동메달은 가능했으리라는

당시 일부 선수들의 아쉬움이 매우컸다고 합니다

-옮긴이 주)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여자 배구가 올림픽 메달을 따기까지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대한배구협회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를 앞두고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일본 여자 배구를 올림픽 금메달로 이끈

다이마쓰 히로부미를 초빙해

김한수 감독, 전호관 코치와 함께

대표 팀을 지도하도록 했다.

 

‘동양의 마녀’라는 신화를 만든 다이마쓰는

‘회전 리시브’ 등 혹독한 훈련의 대명사였다.

강훈련이 거듭되는 가운데

선수들 반발이 있었고

주 공격수인 박인실이 무단으로

퇴촌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인실은 당시로는 174cm의 큰 키에

뛰어난 점프력과 강타를 지닌

한국 여자 배구의 간판 공격수였다.

이 사건은 당시 상당한 파문과 논란을 일으켰고

협회는 박인실을 제명했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까지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8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조별 리그  B조에 속한 한국은

첫 경기에서

이 대회 준우승국인 소련과 접전을 펼친 끝에

 1-3으로 졌다.

그러나 이후

쿠바와 동독을 풀세트 접전 끝에

각각 3-2로 물리치고

조 2위로 준결승전에 올랐다.

한국은

조별 리그 A조 1위이자 대회 우승국인 일본에

0-3으로 졌으나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에 3-1(12-15 15-12 15-10 15-6)

역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이에 앞서 1970년대 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달러 문제로 해외 전지훈련은 꿈도 꾸지 못하던

1970년대

여자 배구 대표 팀

태릉선수촌에서 나와

서울 신일고등학교에서 이따금 훈련했다.

이름하여 ‘촌외 훈련이었다.

 

그 무렵 남자 고교 배구의 강호

대신가 주로 훈련 파트너가 됐다.

연습 경기는 대체로 10세트로 진행됐다.

살인적인 훈련량이었다.

게다가 세트를 내주면

곧바로 강한 체력 훈련이 뒤따랐다.


말이 좋아 체력 훈련이지 얼차려였다.

 

블로킹 훈련 때는 손가락에 오자미를 달고 점프했다.

블로킹의 기본은 손가락을 쫙 펴서

상대 공격수가 때린 공을 덮어씌우듯 하는 것이니까

무의식중에 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훈련을 받고도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에 이어

4위에 그쳤다.

그 뒤 다시 4년이 지나서야

눈물로 범벅이 된

올림픽 메달을 손에 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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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선수 이름도 기억나고 1976년 몬트리오올 올림픽에서 정말 숨막히게 하는 승부연속으로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잊을 수가 없군요 당시 유경화는 남자... 젊은 배구팬들은 무슨 청승 이냐 라고 반문하겠지만 개의치 말고 자주 올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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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배구였음을 다수가 알고 있지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오올 하계 올림픽에서 우리 자랑스런 여자 국가대표팀은 천신만고 끝에 동메달을 목에 건 순간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저의 뇌리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당시 매우 냉철한...
    대한배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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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Re: [女子배구-한국대표팀의 ^+역대 성적은? 및 ^북한-1972년 까지 세계 3위 2번 ^+박만복 감독과 페루 은메달-70년대 초-여자배구-村外 훈련-^파트너-고교배구 막강-^+대신고교팀 및+오자미 사건은?]
     작성자 | 한준구 작성일  | 2018/10/06 6:58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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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음공주의 원조 유경화

    미소의여왕 유정혜,

    날으는 작은새 조혜정및

    여자배구 국가대표 분발을 기대하며!

    조회 1201|2006.12.25 |0

    한준구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올림픽에서 메달을 최초로 딴 종목은 다름아닌 여자 배구였음을

    다수가 알고 있지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오올 하계 올림픽에서 우리 자랑스런 여자

    국가대표팀은 천신만고 끝에 동메달을 목에 건 순간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저의 뇌리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당시 매우 냉철한 이성과 판단으로 팀의 핵심이었

    던 유경화(얼음 공주의 원조)---당시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 표현을 자제하였던 얼짱

    이었으며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바 있었음- 그리고 날으는 작은 새 조혜정- 당시

    1미터 70센티도 채 안되는 작은 키(165센티)로 구라파의 장신 숲을 뚫고 터뜨리는 강타는 매우 인

    상적이었고 전세계 배구인및 배구팬들에게 한국인의 강한 모습을 심어주었음-그런 그녀도

    다소 슬럼프를 느낄 때면 당시 아시아 최고의 거포 강만수 선수가 연습하고 있는 체육관을

    찾아가 그의 시원한 강타 연습을 보며 다시 컨디션을 조절하곤 했다는 일화도 유명함-

    경기에서 포인트를 올릴 때마다 아름다운 미소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유정애등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나곤 합니다. 지난 30년간 한국여자 배구도 수없는 부침을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렀는 데 30년전 저의 기억으로는 1964년 동경올림픽에서 다이마쓰(발음은 다

    소 틀릴지 모름)감독휘하에 스파르타 훈련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우리는 12년만에 일

    본 여자 배구를 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그 turning point가 1976년이 아니었나 사료

    됩니다. 그런데 그당시 중국 여자 배구는 우리보다 한수 아래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단지 어

    설프지만 재목이 좋아 언젠가 우리를 충분히 넘볼 가능성은 충분하리라는 예견을 한 배구인

    이 다수 계셨던 것으로 간주된 중국여자팀이었는데 80년대 이후 세계적인 강팀으로 부상하

    였고 -2004 올림픽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금메달을 목에 건 일도 생각이 납니다.

    우리남자 배구국가대표팀은 자랑스러이 아시안 게임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 데

    남자팀도 기실 86년 서울 90년 베이징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계속

    중국에게 석패한 쓰라린 경험이 밑거름이 된 점을 우리 여자배구팀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며 30년전 대선배 언니들의 투혼을 되살리고 마음을 추스려서 몇가지

    시행착오- 신구의 조화 세대교체의 타이밍,선후배간의 격의없는 대화-히딩크가

    축구 감독 초기 간파한 한국적 위계질서의 조화로운 타파를 벤치마킹해야 됨-

    신문에 보도된 일부 고참급 선수에 대한 후배의 시합중 적절한 요구를 망설였던

    아쉬움, 감독 선임-야구,남자농구는 다소 의외였고 여자배구도 결과론이지만 다소

    개인적으로 의아해 했었음-필자주- 단기적으로는 앞으로 닥친 2008년 베이징올

    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중국은 안나오겠지만 무섭게 성장하여 일본을 격파하고 한

    국여자배구에도 경종을 울린 바 있는 대만팀,그리고 복병 태국여자팀도 지금부터

    그들의 전력및 작전 분석을 위한 대외비 회동을 배구협회에서는 착실히 새해 연초

    부터 시작하시리라 믿습니다. 추후에 다시 올리겠사오며 배구인 모두 그리고 배구

    협회 부디 행운과 영광과 발전이 충만된 새해가 되길 충심으로 기원하며 이만 줄

    입니다. 2006.12.25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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