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  /  검색  /  로그인  /  회원가입
자유게시판
배구 Q&A
배구인 소식
 
 Home > 어울림방 > 자유게시판 > [1976년-Canada-몬트리오올-올림픽 女子배구 銅메달 主役중의 한 분-英雄-^유경화 理事-최근 김연경 선수에 다소 부담되는 설득^발언에 대해--힘드시겠지만-이곳에 몇가지 미심쩍은 부문-解明 글 올리시길]

 제목 | 참고 [1976년-Canada-몬트리오올-올림픽 女子배구 銅메달 主役중의 한 분-英雄-^유경화 理事-최근 김연경 선수에 다소 부담되는 설득^발언에 대해--힘드시겠지만-이곳에 몇가지 미심쩍은 부문-解明 글 올리시길]
 작성자 | 한준구 작성일  | 2017/08/09 3:35 am

***************

***************

위의 제목과 관련한 다음 지적 내용에 대해

1976년 몬트리오올(캐나다) 올림픽에서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최초의 메달을 따는 데

주역중의 한 명이었던

^배구 영웅 유경화 위원은?

일부 미심쩍은 내용에 대해

이곳에다 ^+솔직하게 답변해 주시길 바랍니다.

***************

대표팀 홍성진 감독
'김연경 제외' 보고에도..
핵심 관계자
"그랜드챔피언스컵 출전해 달라" 제안

[오마이뉴스 글:김영국, 사진:박진철, 편집:김예지

3명의 기자 제위께 감사를 드립니다.]

▲  유경화 배구협회 여자 경기력향상이사(왼쪽)와 김연경 선수
ⓒ 박진철
배구협회 핵심 인사가 국가대표 주전 선수 혹사 문제를 공개 비판하던 김연경(30세·192cm)에게 '국제대회 추가 출전'을 직접 종용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김연경은 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여자배구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필리핀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대한민국배구협회(아래 배구협회)를 향해 맹비판을 가했다.

비판의 핵심은

▲ 국가대표 주전 선수 혹사

▲ 부실 지원 ▲ 도쿄 올림픽 체계적 준비 실종 등이었다.

대표팀 주장이기도 한 김연경은

그동안 참아 왔던 속내를 작심하고 털어놨다.

이날 김연경의 배구협회 공개 비판은

사실상 초유의 일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언론에 공개적으로 대표팀 부실 지원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경화 배구협회 여자 경기력향상이사는

김연경이 기자들과 인터뷰를 끝내자 따로 불러내 대화했다.

그 자리에서 유 이사는 김연경에게

오는 9월 5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회에

출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날 아침 공항에 가기에 앞서

홍성진 여자배구 국가대표 감독이

유 이사에게

'김연경은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처음부터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보고까지 했다는 점. 

유 이사가 공항 출국장에서 다시 한 번

김연경에게 출전을 설득한 것이기에,

'혹사 논란'이 예상된다.

월드그랜드챔피언스

일본이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대회로

세계랭킹 점수도 주어지지 않는 이벤트성 대회이다.

주최국 입장에서는

흥행을 위해

세계 최고 선수인 김연경의 출전을 당연히 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국 배구협회가 그런 요구를 맞춰 주기 위해

김연경을 혹사시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감독의 '김연경 제외' 보고에도 공항서 '출전' 설득

유경화 이사는 지난 7월 26일

오한남 신임 회장 체제의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여자 경기력향상이사로 임명됐다.

여자 경기력향이사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선수 선발과 관리를

총괄하는 핵심 요직이다.

유 이사는 이날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오한남 회장을 대신해서

여자배구 대표팀 출국을 격려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그리고 출국 직전에 김연경과 개별 면담을 한 것이다.

김연경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

유 이사는 7일 저녁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7일 아침에 홍성진 감독에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출전에 대해) 김연경이 설득이 안 됩니까'

하고 물었더니,

홍 감독이

 '김연경은 처음부터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는 출전을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래서 내가 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김연경에게

네가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한 번 나가서,

풀로 뛰지는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상징이니까

좀 어렵고 고생스럽겠지만

(경기에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선수를 했기 때문에

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해줬으면 좋겠다고

설득해봤다"고 말했다.

유 이사는

"일본이 한국을 초청했을 때는

솔직히 김연경 선수의 효과를 보고 초청했을 거 같다"며

"그래서 지금 한창 배구가 인기가 있으니

김연경이 좀 나가서 여자배구의 인기를

조금 더 올려줬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에

의견을 타진해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이사는

김연경의 반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연경이가 일단 생각을 해보겠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유경화 이사

"의사 타진일뿐, 협회 차원 압력 아니다"

기자는

유경화 이사가 김연경 선수에게 그런 발언을 한 취지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질문을 했다.

"일본 배구협회에서 한국을 초청했을 때는

김연경 효과를 보고 했을 것이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얘기다.

그런데 김연경 선수는

유경화 이사도 잘 아시다시피

올해 국제대회를 줄줄이 치르고 있고,

일정도 빡빡해서

현재 혹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심하게 혹사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회는

세계랭킹 포인트도 안 주어지고

일본 배구가 흥행 차원에서 하는 이벤트성 대회인데,

굳이 김연경 선수를 국가대표에 계속 차출해서

혹사를 시켜버리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하는 지적이 있다.

그런 것 때문에

배구팬과 네티즌들이

배구협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자 유 이사는

"김연경 선수는

배구협회나 한국 배구 차원에서

당연히 보호해줘야 할 선수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며

"그래서 (김연경에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하면 더 좋겠다고

의사를 타진한 것이지,

협회 측에서

압력을 넣어서

꼭 데리고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기자는 재차 질의했다.

"유경화 이사는 그런 뜻으로 말을 했겠지만,

그 말을 받아들이는 선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압력이라고까지는 안 해도

굉장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배구협회가

대승적 차원에서

아예 제외시켜 주든지 해야 하는데,

계속 이런저런 이유를 제시하면서

모든 국제대회에 다 나가라고 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실은

김연경 선에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하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어본 자체가 썩 바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김연경 선수 본인의 의사는

굳이 묻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런데 국가대표 선발·관리를 총 책임지고 있는

경기력향상이사가

직접 출전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의견을 물어보면

김연경 선수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面前에서 '나 못 가겠다'는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유 이사는

"제 생각은

김연경 선수가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가서 경기에 뛰지는 않더라도

어린 선수들도 다독거리고,

또 김연경 선수가 있으므로 해서

다른 선수들이 의지도 되고 하니까

다른 선수들도 거기에 힘을 얻지 않겠는가"라고 답변했다.

"김연경에게 너무 큰 부담"...

유 이사 "꼭 데려가려는 의도 아녔다"

기자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 이사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연경 같은 경우는

지금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에서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데리고 가는 자체가 혹사인 것 같다.

일단 가기로 결정되면,

또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고,

가서 편하게 쉴 수도 없다.

연습은 연습대로 해야 되고,

김연경 선수의 강한 책임감으로 볼 때

일부 경기들은 자기가 직접 뛰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선수는

모든 경기에 앞서 잘 준비해서 최선을 다해 뛰어야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서

설렁설렁 경기를 하게 되면

오히려 부상 위험이 더 크다.

때문에 유 이사가 그런 생각이라면,

김연경을 아예 데리고 가지 않는 게 더 맞는 것 아닌가.

또한, 유 이사의 말대로

김연경이 어린 선수들에게

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왜 김연경 선수가 모든 국제대회마다 가서

그 역할을 다 해야 하는 것인가.

배구협회가 김연경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 아닌가."

그러자 유 이사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내가 할 말이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김연경을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꼭 데리고 가야 되겠다는

그런 의도는 아니다"라며

"내가 국가대표 선발 책임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김연경에게 의사를 물어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랜드챔피언스컵 출전 명단' 초안...

김연경만 빼고, 다른 선수들 그대로?

한편, 유경화 이사는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할

대표팀 선수 명단 초안도 이미 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초안에는 김연경이 안 들어 있다"면서

"대신 양효진, 김희진, 박정아 등

현재 주전 멤버들은 그대로 있고,

거기에 이재영이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종 엔트리는 홍성진 감독이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상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이사는

"그런 상황에서 김연경 선수의 출전 의사를

다시 한번 타진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얘기를 나눠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초안 대로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표팀 엔트리

최종 결정될 경우,

또 다른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김연경 선수를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회에서

제외하는 것은

여러모로 당연하고 적절한 조치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양효진·김희진·박정아 등

기존 주전 선수들이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해도 상관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선수들도 올해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국제대회에

풀로 출전하면서

혹사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수 개인적으로도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어 몸 상태도 좋지 않다.

양효진·김희진·박정아 혹사해도 되나... 김연경도 '부담'

올해 한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일정을 살펴보면,

그 심각성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여자배구 대표팀의 주전 선수들은

올해 6월 3일 한국배구연맹(KOVO)이 주최한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매치' 출전을 시작으로

살인적인 국제대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대표팀은

지난 월드그랑프리 대회에서

7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일주일 간격으로 불가리아-폴란드-한국-체코를 오가는

강행군을 펼쳤다.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채

매주 3일 연속 경기를 치렀다.

비몽사몽 간에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오는 9일부터 필리핀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대회는

월드그랑프리보다 더욱 빡빡하다.

한국 대표팀은 9일부터 11일까지 3일 연속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12일 하루 쉬고,

다시 13일부터 17일까지

무려 5일 연속해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불과 보름여 만인

 9월 5일부터는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해야 한다. 이

 대회에서는 9월 5일부터 6일까지

2일 연속,

다시 8일부터 10일까지 3일 연속 경기를 펼쳐야 한다.

상대할 팀도

중국, 브라질, 미국, 러시아, 일본으로

세계 최정상급 팀들이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10일 만인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도 출전해야 한다.

이 대회는 올해 가장 중요한 국제대회로

도쿄 올림픽 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제대회 중간중간 국가대표 소집 훈련까지 감안하면,

가히 살인적인 일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데다 월드그랑프리 대회에서

김연경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거의 全 경기를 뛰다시피 했다.

설상가상 으로

배구협회마저

대표팀을 도와주기는커녕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배구협회는

여자배구 월드그랑프리 대표팀 엔트리를

다른 나라보다 2명이 적은 12명만으로 운영했다.

여자배구 대표팀에게 절반은 비즈니스석,

절반은 이코노미석을 타고 가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비난을 자초했다(관련 기사 : "남자는 전원, 여자는 절반만" 여자 배구대표팀의 '서러운' 원정길). 그 와중에 오 회장은 강남 고급 호텔에서 취임식을 열어 기름을 부었다.

그런데 또다시 이번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도

다른 나라보다 적은 13명만으로 대표팀 엔트리를 구성해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남녀 배구가 세계 강팀들의 행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장신 유망주 발굴·육성 외면과

국가대표 주전급 선수 혹사 논란이 대표적이다.

세계 배구 강국들은

월드그랑프리 대회 등에서 보듯,

이미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과

메달 획득을 목표로

철저하게

주전 선수 휴식과 유망주 발굴

초점을 맞춰

대표팀을 구성하고 운영했다.

그러나 한국 여자배구는

리우 올림픽 주전 멤버를 거의 그대로 풀가동하고 있다.

 나이 어린 장신 유망주는 전무했다.

결국 참다못한 김연경이

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언론 기자들에게 이 같은 문제점들에 대해 신랄하게 공개 비판을 하고 나섰다(관련 기사 : 결국 '폭발한' 김연경, 진짜 문제는 배구협회다).
 
이 난리통에 '배구협회 회장은 부재중'

그런 상황에서 김연경 선수가 본인 혼자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대표팀에서 빠졌을 때, 남은 선수들에게 어떤 심정을 가질지는 불문가지다. 마음이 편할 리 만무하다.

기자는 유경화 이사에게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 같은 대회에는 유망주들을 많이 뽑아서 데리고 가는 것도 방법 아닌가"라고 물었다.

유 이사는

"한국도 세대교체를 해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올해까지는 (일정이) 이미 다 정해졌고,

이제 두 국제대회가 남아 있는데

당장 낼모레 시합이고 엔트리도 다 올라가 있다"며

"여기에서 신인들로 확 바꾸고

선수 교체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이렇게 마무리를 잘하고,

그리고 나서 계획을 세워서

내년부터 신인으로 많이 교체하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배구협회가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다.

그런 걸 하라고 존재하는 게 배구협회이기 때문이다.

일본 배구의 흥행을 위해

한국 국가대표 주전 선수들을 계속 혹사시킬 것인지,

과감하게 그동안 휴식을 가진 프로 선수나

나이 어린 장신 유망주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최근 연이어 터져 나오는 사태들과 관련해

수습책을 묻기 위해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하면,

한결같이 들어야 하는 답변이 있다.

"제가 임명된 지 며칠밖에 안 돼서"였다.

보름도 안 된 신임 임원들만

이 난리통을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배구협회 지도부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경우도 있다.

#김연경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면? 

***************

 제목 | Re: [1976년-Canada-몬트리오올-올림픽 女子배구 銅메달 主役중의 한 분-英雄-^유경화 理事-최근 김연경 선수에 다소 부담되는 설득^발언에 대해--힘드시겠지만-이곳에 몇가지 미심쩍은 부문-解明 글 올리시길]
 작성자 | 한준구 작성일  | 2017/08/09 4:35 am

***************

***************

[매거진]


울지 않는 코트의 여우, 유경화

더스파이크님의 프로필 사진
2,169 읽음



배구를 해서 정말 행복합니다. 배구인으로 살면서 모든 것을 누렸습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월드컵에서 베스트 6에 선정되었으며 기자단이 선정하는 미스 월드에도 뽑혔고 각종 대회 때마다 상도 받았습니다.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각국을 다녔으며 은퇴한 뒤에도 대한민국배구협회 이사, 국민생활체육회 전국배구연합회 부회장, 프로배구 경기감독관도 거쳤습니다. 지금도 후배들이 찾아 주는가 하면 유소년들에게 내가 가진 작은 재능을 베풀 수 있는 기회까지배구를 해서 정말 행복합니다.


160701sks_LY04.jpg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 배구 동메달의 주역 유경화(63)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행복하다는 말을 몇 차례나 되풀이했다. 배구와 인연을 맺은 것이 행운이었고 은퇴한 지 30년이 훌쩍 넘어섰지만 지금도 배구 덕분에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요즘 그녀는 서울 봉은초등학교에서 몬트리올 올림픽 동료였던 박미금과 함께 유소년 스포츠배구클럽 지도자로 활동, 유소년 지도에 정성을 쏟고 있다. 순수한 재능기부다. 유소년 스포츠배구클럽은 대한민국배구협회와 IBK기업은행, 프로배구단 후원으로 2009년 서울 반포, 인천 주안, 수원 잠원에서 시작해 현재는 서울 봉은, 성일, 동명, 구남, 인천 부개서, 연선, 성남 돌마, 파주 마지초등학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초등학교 2~4학년인 저학년 여학생은 부드러운 볼로, 그리고 5~6학년 남녀 고학년은 배구공으로 각종 놀이와 접목해 자연스럽게 배구를 접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기흥에서 서울로 오는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조금씩 배구에 흥미를 가지고 재미를 붙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고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유소년 스포츠배구클럽을 거친 세화여중 박현주, 반포초등학교 박예원, 인천 주안초등학교 박현빈, 강승규 등 10여 명은 현재 엘리트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고. 하지만 많은 학교에서 지도자 요청을 하고 있으나 모두 재능기부로 이루어지고 강사료를 지급할 여유가 없어 더 많은 학교에서 추진을 하지 못해 아쉽다는 그녀는 유소년 스포츠배구클럽 활성화는 우리 배구인 모두의 희망이며 비전이라는 인식을 갖고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보였다.


우연히 본 배구에 매료돼 선수 자청
33녀 형제 가운데 넷째이자 막내딸로 강원도 문막이 고향인 유경화는 광산업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 부유하게 보냈고 일찍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당시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체력장 시험을 치렀는데 달리기에서는 언제나 1등을 할 정도로 운동에 재질을 보였지만 전문선수가 된다는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이런 그녀에게 배구가 운명처럼 다가온 것은 동구여중 2학년 때인 19675월 어느 날이었다. 화창한 5월 햇살을 받으며 친구들과 함께 옥상에서 중간시험 공부를 하던 그녀가 문득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좁은 코트 안에서 훈련을 하는 배구 선수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실내체육관이라고는 구경하기도 어렵던 시절, 운동장 한 구석에 배구코트를 만들어 놓고 맨 땅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코치가 이쪽저쪽으로 던지는 볼을 쫓아 달리기만 할 뿐 제대로 볼을 받아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는 저 정도도 못 받아내나? 나 같으면 충분히 할 텐데…”라며 흥미를 보인 것이 배구와 첫 만남이었다.


때마침 배구 감독이 교실마다 다니면서 선수 지망생을 찾아 다니자 그녀는 서슴없이 자원했다. 솔직하게 배구 선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선수들보다 내가 더 잘 한다는 모습을 과시하고픈 욕심이 더 강했다.


하지만 감독은 썩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바로 키가 155정도밖에 되지 않아 배구선수로는 너무 작았던 것. 이 바람에 배구에 입문하고서도 그만 두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고 20여명에 이르던 동기는 어느 새 하나 둘씩 팀을 빠져 나가 졸업할 때에는 동기가 한 명도 없을 정도였지만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동구여중 감독은 뒷날 현대여자배구단을 실업 정상으로 이끌었던 이임 감독이었다.


발이 빠른데다 볼을 다루는 센스도 뛰어났던 그녀는 숭의여고에 입학해 송유진 감독과 호흡을 맞추면서 천부적인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키도 170로 훌쩍 커졌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 장안의 화제를 불러왔던 대신-인창, 숭의-덕성 4개교가 벌이는 4고교 배구대회에서 조혜정, 유정혜 노창희 등과 함께 숭의 전성시대를 이끌었고 고교 3학년 때인 1971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배구를 시작한 지 불과 3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우리나라 여자 배구 대들보로 일찌감치 인정을 받은 것이다.


1972년 졸업과 동시에 실업 배구 최강인 국세청에 입단한 그녀는 세터 겸 공격 형 센터로 실업 1년생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 1968년 박만복 감독, 이창호 코치 체제로 출범한 국세청은 초창기 잠깐 팀 정비로 어려움을 겪었을 뿐 1973년 대농이 인수할 때까지 그야말로 무적함대로 군림했다. 이후 대농이 미도파로 이름을 바꾸고 19804월 태광산업에 일격을 당하기까지 무려 181연승이라는 우리나라 배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다. 그 시발점이 바로 국세청이었다. 또한 그 연승가도에는 바로 유경화라는 걸출한 세터가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국세청-대농-미도파가 경기를 하면 장충체육관에 5천명 관중이 들어찰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1972년 뮌헨올림픽 4,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인기 요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팬들은 이들의 연승에 환호를 하면서도 언제 패하느냐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국가대표 주공격수인 김영자 조혜정 길송애 최숙 윤영내 유정혜 그야말로 팀 자체가 국가대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유경화는 여자선수 세터로 상당히 큰 키(171cm)로 다양한 공격을 만들어 내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오픈 공격을 위한 볼 연결은 물론 상대팀이 예측할 수 없는 속공 유도, 특히 비슷한 신장인 유정혜와 콤비를 이룬 속공은 위력적이었으며 때때로 세트 제스처를 가장한 기습적인 직접 공격도 일품이었습니다.당시 배구를 취재했던 한 원로기자가 기억하는 유경화 모습이다.

160702sks_LY02.jpg


일본 배구의 神話다이마쓰 만나

名 세터
유경화 배구 인생은 일본 배구 신화다이마쓰 히로부미(1921~1978)를 만나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다이마쓰는 동양인 몸에 맞는 훈련을 개발하라. 죽을 힘을 다해 훈련하라. 하면 된다라는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일본여자 배구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 올린 신화적 인물.

다이마쓰가 조련한 일본 여자배구

1962년 모스크바 세계배구선수권대회에서

국제대회 11연승을 달리던 소련3-0으로 누르고

우승한 것을 비롯해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구기 종목 사상

첫 아시아권 올림픽 우승이루어냈다.


대한배구협회 초청으로 내한한 다이마쓰는 유경화가 지금보다 한 계단 더 높은 세터로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이 있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때부터 다이마쓰 특유의 유경화 세터 만들기특별 훈련이 실시됐다.   

 
하루 종일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지면에서 50~60정도로 볼을 튀긴 뒤 반드시 두 손을 사용해 볼을 올리도록 했으며 언더핸드는 용납하지 않았다. 아무리 낮은 볼이라도 세터는 넘어지면서까지 공격수가 제대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올려 주어야 하는데 언더핸드로는 정확하게 볼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다이마쓰의 지론이었다.


자신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유정혜에게는 아예 훈련을 시키지도 않았다. 입에 올리기 힘든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뮌헨올림픽과 몬트리올올림픽을 앞두고 힘든 훈련을 견디다 못한 선수들이 두 차례씩이나 집단으로 이탈하는 사건이 난 것도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학교 다닐 때는 방학 동안에 훈련을 받았고 일본 전지훈련을 가서도 집중 훈련을 했습니다. 일본 실업팀들인 히다치, 도요보, 야쿠르트, 산요, 유니티카 등과 오전에 5~6세트, 오후에 7~8세트 연습경기를 하고 남는 시간에도 훈련을 했습니다. 이쪽 엔드라인에서 볼을 띄우고 다시 반대쪽 엔드라인까지 뛰고, 거의 받을 수 없는 묘한 자리에 볼을 주고는 받지 못하면 꾸중을 하고. 몸은 곤죽이 되고 등은 아예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쉬는 시간은 화장실 갈 때뿐이었습니다. 화장실에 앉아 5~6분 꿀 잠이 들면 후배들이 찾으러 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힘든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그녀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실업 1년차인 그녀가 1972년 뮌헨올림픽에 주전 세터로 나설 수 있었던 연유이기도 했다.


최이식 감독 전호관 코치 김은희 김영자 이경숙 이순복 조혜정 이정자 유정혜 이인숙 윤영내 이경애 유경화가 팀 웍을 이룬 한국은 3~4위전에서 북한에 0-3으로 완패해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유경화는 올림픽을 통해 한 계단 더 성숙해졌다.


솔직하게 북한과 3~4위전에서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고나 할까요. 역대 최고 성적을 내고도 북한에 지는 바람에 환영도 받지 못하고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며 귀국한 것 밖에 기억에 없어요.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세터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는 계기는 되었습니다.
 
76_몬트리올_16.jpg울지 않는 코트의 여우별명 얻은 몬트리올 올림픽
뮌헨올림픽에서 4위는 우리 선수들에게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4년 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는 쾌거로 이어진다.


동메달로 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메달에 대한 압박감이 선수들을 짓눌렀다. 이 바람에 선수들은 지나친 부담감으로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8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B조에 속한 우리나라는 첫 경기에서 소련(현 러시아)1-3으로 패해 불안하게 출발했다. 쿠바와 동독과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풀세트 접전을 벌였다. 2. 준결승에서 만난 A1위이자 세계 최강 일본에 0-3으로 완패해 3-4위전에서 헝가리에 첫 세트를 12-15로 내주고 나머지 3세트를 내리 따내 3-1로 역전승, 감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조혜정 이순복 유경화 유정혜 정순옥 마금자 장혜숙 이순옥 박미금 변경자 백명선 윤영내 등 12명 자랑스런 얼굴들이 거둔 우리나라 구기 종목 사상 올림픽 첫 메달이었다. 선수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에 겨운 울음을 터뜨릴 때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은 선수가 있었다. 바로 세터 유경화였다.


아직 기억이 생생합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닭살이 돋고 이런 순간도 오는 구나, 이것이 4년 동안 새벽, 아침, 저녁, 야간 훈련에 이르기까지 고생한 보람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순간적으로 울컥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뭔가 부족했다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태릉선수촌에서 쿠바와 친선경기를 하는 도중에 블로킹을 하고 내려오다 쿠바선수 발을 밟아 발목이 삐끗하는 부상을 당해 침을 맞고 테이핑을 하고 훈련을 했지만 제대로 치료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올림픽에도 발목이 완쾌되지 않은 채로 경기를 해야 했습니다.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자책만이 앞섰습니다. 눈물이 나지 않더군요.


이 바람에 얻은 별명이 울지 않는 코트의 여우.


뭔가 부족하고 못다 한 미련은 남았지만 올림픽에서 활약으로 미국 프로팀에서 손길이 뻗쳐왔다. 원한다면 미국 대학에 다닐 수 있는 장학금도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평소에도 못다 한 공부를 하고 싶었던 그녀는 유학을 결심하지만 국내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매국노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대한배구협회 이낙선 회장은 아예 외국에 못 내보낸다고 공식적으로 천명까지 했다.


결국 유학길이 막혀 버렸고 1977년 초에는 허리부상이 심해 국가대표 강화훈련 마저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해 말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대회에 대비해 국가대표로 곧 복귀는 했지만 그녀 가슴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또 찾아왔다. 그녀가 학비를 대주며 아끼던 동생 희종이 106일 한국배구 올스타전이 열리기 이틀 전에 새로 이사를 간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던 것. 하지만 그녀는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었다. 국가대표라는 자리가 동생을 잃은 슬픔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유경화는 월드컵에서 일본 쿠바에 이어 우리나라를 3위로 이끈 뒤 은퇴설에 휩싸였다. 뮌헨, 몬트리올올림픽을 거치면서 스승과 제자로 호흡을 맞췄던 전호관 감독의 소개로 만난 최인규 씨와 결혼설 때문이었다. 26살 한창 전성기이지만 이미 노장으로 치부되는데다 결혼은 곧 은퇴로 여겨지던 당시 세태도 한몫을 했다.


그녀 은퇴 소식에 배구계는 들썩였다. 이낙선 회장까지 나서 은퇴를 만류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4(19788), 방콕 아시안게임 3(197811)를 마지막으로 1979112년간의 선수생활을 마치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160701sks_LY06.jpg

세터 유경화가 김연경 양효진과 함께 한다면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배구 인이 배구 판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 두 아이 엄마가 된 유경화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으로 배구를 떠나긴 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코트가 그리웠다.


그리고 기회도 왔다. 한국도로공사 윤필용 사장과 장종술 감독 권유를 받아 813월 도로공사 트레이너가 되어 코트에 돌아 왔다. 그녀는 같은 주부선수로 국가대표 출신인 권인숙과 호흡을 맞추며 이해 5월 마산 종별대회 준우승, 123차 실업연맹전 3위에 이어 19821월 종합선수권에서는 거함 미도파마저 격침시키며 준우승을 차지, 녹슬지 않는 기량을 과시했다.


유경화가 활약하던 시절을 함께한 많은 배구인들이나 취재기자들은 그녀는 위기에 몰리더라도 결코 서두르지 않고 초조해 하지도 않았으며 남자 못지않은 배짱에다 당찬 기개가 있었던 여자선수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조용하고 야단스럽지는 않았지만 여성의 멋은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싶어 했다. 외국에서 유행하는 특이한 옷도 과감하게 입었고 귀고리 등 여성성을 드러내는 장신구도 달고 다녔다. 기술보다는 정신력을 강조하던 시대여서 협회나 코칭스태프의 많은 우려와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여자배구가 지금 침체되어 있습니다. 프로 의식을 채 갖추기 전에 프로가 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프로라고 부르기 너무 부끄럽습니다. 프로는 명성에 맞는 실력을 함께 지녀야 합니다. 모든 조건은 좋아졌지만 훈련이 적어 실력이 늘지 않고 있는 탓입니다.


그녀는 김숙 박미금 등 은퇴선수들로 생활체육 클럽팀을 구성해 아직도 코트를 누비기도 하고 유소년 지도에도 열을 쏟고 있으며 여자 대학배구 활성화를 위한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고교시절에 국가대표팀 세터로 들어가 스스로 자신만의 세터 스타일을 만들어 낸 유경화. 이제 곧 다가 온 리우올림픽. 김연경 양효진에 전성시절의 유경화가 세터로 뒤를 받쳐 준다면 몬트리올올림픽 이상의 영광도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기분 좋은 상상도 해본다.


/ 정태화 한국체육언론인회 사무총장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 신승규 기자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본인 제공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8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목록보기 

이동: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25, 잠실주경기장내 B211호 (우: 05500)
E-mail : kva@kva.or.kr (총무부), gamed@kva.or.kr (경기부), international@kva.or.kr (국제부), volley7330@hanmail.net (생활체육부)
TEL : 02)417-8410 (생활체육부), 02)578-9029 (경기부), 02)578-9027 (국제부), 02)578-9025 (총무부) / FAX : 02)417-8491
Supported by ONTO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