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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구역사
   | 1960년대

   해방 후 2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전쟁의 혼란을 겪은 10여년을 제한다 해도 우리 체육계가 어느덧 성년을 맞이하게 된 이 시점에서 한번쯤은 자기 검토를 해 보아야 할 일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민족사의 비극 속에서도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체육강국이라 자타할만한 우리 체육계였지만, 성년이라는 이름을 내 걸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이 있었다.

   우선 32개 산하단체를 옹호하고 있는 대한 체육회가 모두 비체육인들에 의해 운영되는 바람에 순수성을 잃고 정치에 기생하여 그 여파에 주체적이고 일관적인 체육진흥을 가져오지 못한 점이다. 그 뿐인가, 비대해진 체육회를 이끌어 갈 행정부 하나 없이 무기력한 문교부의 무관심한 태도속에 방치되다 보니 모든 책임이 경제력도 실질적 권한도 없는 대한체육회로 돌아가 국내 각 체육의 발전이라던가 해외진출의 기회에도 든든한 뒷받침을 하지 못하였다. 이는 곧 모든 체육계 전반에 걸친 제반시설의 낙후와 인재발굴의 난점을 몰고 왔고 결국 무한정 성장할 수 있었을 우리 체육계의 잠재력을 사장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1964년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체육진흥이 국가적 과제이자 국민적 관심이 대상이 되면서 1965년에는 효력을 발휘 하지 못하던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체육계에 일대 서광을 비추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시작만 했을 뿐 끝을 보지 못하던 체육회관 준공이 국가적 보조에 힘입어 1965년 말에 그 완공을 보기에 이르렀다.또한 5회 아시아대회와 제 19회 멕시코올림픽 및 1970년도의 아시아대회에 이르기까지 6개년 [장기선수 강화훈련계획]을 작성,지도자의 자직향상,신인발굴,스포트의 과학화,시설확충 및 기구정비,경기수준의 향상 등을 목적으로 체육계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진흥정책을 펼치기에 이르렀다.

   이런한 체육계 전반의 분위기는 배구계에도 양향을 미쳐 이 시기 배구는 9인제에서 6인제로 넘어가는 전환기적 진통속에 초등학교부터 실업에 이르기까지 배구인구의 급속한 확산은 물론 기술과 체력 그리고 신장의 두드러진 성장을 보인 때이기도 하다.

   배구의 붐은 남녀 실업팀을 비롯 중·고교팀들이 우후죽순 탄생, 초등학교배구가 창설되고 아시아 청소년 배구대회가 우리 손으로 창설되는 등 학교 배구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 시기이며 6인제 도입 초기와는 달리 날이 갈수록 서울과 지방간의 실력차가 줄면서 평준화의 시대를 예고한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국내 각종 경기만이 아니라 국제 경기에도 부단히 참여함은 물론 친선경기차 해외로 원정을 나가거나 외국팀을 초청하기도 했다.

   국제경기 참여를 보면 배구가 최초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벌어진 1964년 동경올림픽에 남녀팀 모두 참가했으며 아시아 경기대회의 경우 1962년 제4회 자카르타대회에 한국은 처음으로 여자팀을 보냈음은 물론 6인제에도 참여하여 상당한 전적을 올리기도 하였다. 국내의 상황을 살펴보면 1962년 故 박계조를 추모하는 '박계조배 배구대회"가 창성되었고 1963년엔 대한배구협회 산하 단체로 '한국실업 배구연맹' 창립되어 한국 실업 배구연맹전이 시작됨은 물론 1963년 각종 대회가 잇달아 신설됨으로써 전국에 걸친 배구의 보급과 배구인구의 저변확대에 일조를 가하게 되었다.

   또 청소년배구를 육성, 권장하는 의미로 1962년 한일고교 교환경기에 대한 사업이 대한배구협회와 일본배구협회간에 착실히 진행되었으고, 3회 대회로 막을 내리긴 하였으나 각국 청소년 배구의 실력을 저울질하는 동시에 장차의 기술향상과 발전에 도움을 주자는 의미에서 우리의 제의로 개최된 '아시아 청소년 배구대회'도 있다.

   6·9인제가 병행되었던 이 시기 우리 배구를 일괄해 보자면 국내적으로는 6인제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중·고배구의 붐과 국가적차원의 초등학교 배구 육성책이 실시되는 등 주목할만한 변모가 있었으며, 국제적으로는 활발한 해외진출을 모색하면서 처음으로 국제대회에서 북한과 집전하여 배구가 범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여러 국제대회를 통하여 우리 배구의 세계 무대 진출에 밝은 전망을 제시해 준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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